[이근 교수](정동칼럼) 현실적 북핵 대책은 현실서 나온다 (경향신문 2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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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6일 수소폭탄 실험이 완벽하게 성공하였고, 수소폭탄의 소형화를 달성하였으며, 북한의 핵능력이 더욱 향상되었다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하였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전격적으로 단행한 핵실험이어서 놀라운 일이기는 하나, 냉정하게 보면 북한은 기왕에 하던 일을 계속해 온 것이다. 이번 핵실험을 안 했다 하더라도 이전 세 번의 핵실험이 없었던 것이 되지 않을뿐더러, 유엔 안보리의 제재 때문에 북한이 핵개발을 멈출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의 반응도 역시 기왕에 하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동북아가 요동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한·미·일 남방 삼각 대 북·중·러 북방 삼각의 신냉전 구도가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일본의 핵무장과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제 도입이 코앞에 왔다고 할 것이다. 물론 핵실험의 위력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또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북한은 계속 핵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러한 북한을 욕하면서 또 살아갈 것이다. 혹자들은 이번 북한 핵실험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북의 반발→핵실험 예고→핵실험이라는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나서 그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운반수단의 발사, 그리고 그 운반수단에 실을 향상된 핵능력 과시라는 점에서 기존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번에는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잠수함에서 사출되는 SLBM을 쏘았고, 그게 유엔 제재를 불러오지 않았을 뿐이다. 즉 핵실험의 시점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규칙적인 리듬이 없을 뿐, 북한 핵실험은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었고, 북한이 보내고자 했던 시그널은 항상 동일하다. 위력적인 핵을 어느 곳이든 적지에 투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잠수함 사출 운반수단과 핵의 다종화 소형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동일한 패턴의 핵실험을 계속할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핵 억지(nuclear deterrence)라는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답이 쉽게 나온다. 핵 억지는 아주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우리를 전복시키려 한다면 너희도 죽게 되어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공격을 받아도 살아남는 핵과 운반수단이 있고, 그 핵으로 적을 타격할 수 있으면 (이를 2차 타격능력이라고 한다), 억지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공격을 받은 후의 핵무기 생존율과 타격능력을 높이기 위해 미사일을 잠수함에도 갖다 놓고, 핵탄두의 다종화와 소형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북한은 억지력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미국에 핵을 먼저 사용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하여 반복하고 있다.

이번 핵실험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36년 만에 열리는 노동당 7차 대회를 앞두고 자신의 체제가 굳건할 것이니 앞으로 건드리지 말라는 시그널을 대외적으로 보낸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핵확산과 국내정치, 협상, 협박과 관련된 이론들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론들도 기본적으로는 핵 억지 이론에서 파생된 것들이고 국가가 핵을 갖고자 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아니다. 북한이 영화에 나오듯 세계정복을 꿈꾸는 강대한 악의 제국이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전 세계에 핵확산을 할 이유가 없고 핵을 통하여 돈을 뜯어내는 것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학습하였다.

아무리 핵실험을 해도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무력시위나 협박을 하면 미국의 항모가 들어오고, 핵폭격기가 날아오고,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목을 조여 올 것이라는 것도 안다. 

결국 북한이 일관되게 보낸 시그널과 메시지는 자기들을 전복시킬 생각을 하지 말라는 억지력이다. 이런 북한에 대해서 우리는 한가하게 통일 준비를 얘기하고, 북한 붕괴를 기대하고, 압박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게 다 희망고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존에 불안을 느끼는 북한은 우리가 통일을 얘기하고, 붕괴를 얘기하고, 압박을 가할수록 핵 억지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런 북한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야 한다. 이제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큰일 났다라는 분석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면서 냉정히 대안을 생각해야 할 때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현실적인 대안을 얘기할 때 종북이냐, 친미냐만을 따지고 있으면 지금의 상황에서 한 걸음도 못 나아갈 것이다. 생존이 불안한 이스라엘도 핵을 가졌고, 파키스탄도 핵을 가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308&artid=201601072051555#csidx57ea81132ede9f4ada6cf61cd7615d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