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 포럼) 푸틴 재집권과 대한민국 外交의 과제(문화일보 20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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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7

 [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2년 03월 07일(水)
 
푸틴 재집권과 대한민국 外交의 과제
 
박철희/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학

블라디미르 푸틴은 63.7%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러시아의 대통령에 재집권했다. 2000년과 2004년 당선 이후 총리로 물러났다가 다시 전면에 복귀한 것이다. 지난 12년 간도 러시아는 사실상 푸틴 천하였다. 21세기형 차르로 불릴 만도 하다. 반(反)푸틴 시위도 있었지만, 러시아 국민은 푸틴이 부르짖는 ‘강한 러시아’를 선호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고, 혼란보다는 성장과 안정을 희구하는 러시아인들의 마음이 푸틴 천하를 지속시키고 있다. 고유가 행진이 가져다준 행운인 7%에 이르는 경이적인 경제 성장도 푸틴에 대한 도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푸틴의 귀환은 그가 주장하는 ‘주권민주주의’, 즉 국가의 관리와 통제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국가 자본주의의 지속을 의미한다. 하지만 푸틴의 권력 기반이 탄탄대로만은 아닐 것이다. 반푸틴 세력에 의한 도전은 부패 척결과 국정 쇄신의 필요성을 높여줄 수 있다. 강한 러시아를 표방한 푸틴은 미국의 일방주의적 국제질서에 대항하며 미·중의 빈틈을 파고들 것이다. 강한 러시아만이 러시아를 지킬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군비 증강과 경제 성장 기조를 요구하지만, 유럽과 미국 경제의 침체로 인해 천연가스와 원유의 고가 행진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자원 의존형 경제 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산업국가로의 전환이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러시아의 한 전직 외교관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유럽 지향적인 데 비해 푸틴은 아시아 지향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이 아시아로 복귀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정책 비중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될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은 아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커다란 촉매제가 될 것이다. 이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 동북아시아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아시아의 화약고가 한반도임을 푸틴이 모를 리 없다. 따라서 푸틴은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북한의 야망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동시에 새 북한 지도자의 견고함도 시험하지 말라고 함으로써 비핵화에 바탕을 둔 안정 지향성을 천명했다. 러시아는 자신이 배제된 남북한 대화, 북미 직접대화, 4자회담보다는 자신의 한반도 문제 참여를 보장받을 수 있는 6자회담을 선호할 것이다. 따라서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데 러시아의 동력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시점에 러시아와의 협력은 한반도 안정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푸틴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마지막 보고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을 위해서는 한국의 기술·자본·시장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편한 경제협력 파트너다. 중국은 너무 크고, 일본과는 북방 4도 문제로 껄끄럽지만, 한국은 경제도 역동적이고 안보 위협도 되지 않는다.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 파이프 라인 건설,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연결을 통해 극동지방을 개발할 수 있다면,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팽창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자국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을 저버리지도 않겠지만 한국의 경제적 매력에 눈을 감을 수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유도,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수급, 중국 편향에 대한 균형 회복, 일본의 영토 문제 제기에 대한 대응 등 한국과 러시아의 공통 이익은 적지 않다. 한국은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를 아시아로 불러들여 균형외교를 펼치는 동시에, 실리와 공생에 기반한 북한 문제의 해결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