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빈 교수](경제시평) 뒷북 경제학을 위한 변명 (국민일보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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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경제시평] 뒷북 경제학을 위한 변명

경제학자의 연구 활동은 경기역행적(counter-cyclical)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구할 경우도 드물거니와 이론적·실증적으로 규명해야 할 난제들도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지고 위기가 닥쳐오면 경제학자들은 바빠진다. 경기 하강의 이유 및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적 대응에 관한 의견을 묻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답을 마련하기 위해 이론적 모형을 수정·보완하고 최신 자료들을 활용해 실증적 검증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이어진 대 안정기(Great Moderation) 시대에도 경제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활발하긴 했지만, 그 이후 관련 주제에 관한 연구 논문들이 가히 봇물 터진 것처럼 쏟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시스템 내의 금융시장 역할과 이에 내재된 잠재적 위험 연결 고리들이 기존 이론 모형들에서 간과된 이유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이를 수정·보완하는 이론적 모형들이 제시됐다. 이와 함께 금융기관 및 기업 수준 미시 데이터를 이용해 금융 부문 충격이 어떻게 실물 부문으로 전이가 되고 또 국가 간 전파되는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됐다.

덕분에 이제야 비로소 경제학자 및 정책 당국자들은 금융위기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발생 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적정 대응 방안에 대해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고 위기 발생 이후 수습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뒷북을 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다만 부단한 연구 활동을 통해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이론적·정책적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는 점에서 경제학자의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예측하거나 정책적 대응 방안을 고민할 준비도 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각국에선 유례없는 수준의 정책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그간 경험했던 경제위기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차원의 위기 앞에서 어떤 규모와 방식으로 어느 시기에 재정 및 통화정책을 시행해야 할지, 경제적 약자부터 때리는 위기의 잔인한 현실 앞에서 어떤 방식의 사회보장 및 고용정책을 펼쳐야 할지, 나아가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효과적 방역정책이 무엇일지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 단기적으로는 최적으로 보이는 정책 대응이 중장기적으로는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게 될지도 알 수 없어서 정책 불확실성은 커져만 간다.

물론 유수의 국제기구, 정책연구기관, 학계 연구자들이 저마다의 논리를 바탕으로 경제 처방전을 내놓고는 있지만 의약품으로 따지자면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그대로 따르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결국 정답은 수년 후, 이미 정책적 성공과 실패가 드러난 이후에야 충분히 축적된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통해 면밀히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또다시 뒷북만 치고 마느냐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경제학의 숙명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국내외 경제학자들은 자료를 수집하며 그 정답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위기 이전에 구축된 국내의 우수한 빅데이터 인프라를 활용해 첨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국내 유수 경제학자들의 활동이 눈에 띈다. 훗날 또 다른 팬데믹 위기가 도래할 때, 그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보다 효과적인 정책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비난에도 경제학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