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대한민국 정부라면 이래선 안 된다 (문화일보 20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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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北통지문 뒤 왜 설명 바뀌었나
피해자 자진 월북說 왜 흘리나
왜 시체 훼손을 火葬 미화하나

北만행 靑이 왜 대신 변명하나
골든타임 6시간 왜 흘려보냈나
오토 웜비어 美 노력도 못 봤나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영역에서 발견돼 북한군에게 사살됐다. 북한도 통지문을 통해 총격 사실을 인정했다. 숨진 공무원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국민이 사망했는데 정부의 설명은 오락가락하고 뒤죽박죽이다. 북한의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사과에 오히려 감지덕지하며, 우리 측 설명이 뒤집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공무원 A 씨의 사망은 북한 정권의 실체와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만행이었다. 국제적인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우선, 북한은 바다에 표류해 기진맥진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았다. 바다에 방치한 채 몇 시간을 구두로 조사했다고 한다. 심지어 부유물을 밧줄에 묶어 끌고 다녔다는 정황이 있다. 반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이다. 둘째, 북한은 A 씨를 살려놓고 조사해도 충분한데 사살을 택했다. 북한은 내부 수칙을 내세우지만, 충분한 조사를 한 후에 적절한 법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은 간데없고 인명을 우습게 여기는 북한의 잔인한 속성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셋째, 부유물을 불태웠다는 설명은 앞뒤가 안 맞는다. 시신이 아닌 부유물을 태워 증거를 인멸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시신 훼손이 아니었다면 왜 증거물을 훼손해야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넷째, 방역 때문에 자국 영역에 들어온 사람을 총살하라는 방침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전근대적 발상이다. 혹여 코로나19가 무서워 사살했다는 게 변명이라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음을 북한이 자백한 셈이다.

정부는 애초의 설명과 북한 통지문 이후의 설명이 다른 이유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첫째, 가족들이 극구 부인하는 데도 국방부가 먼저 A 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말로 유도하고 있다. 만약 그가 월북을 시도했다면 북한군의 심문에 왜 ‘대한민국의 아무개’라고 답했을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정부는 한국 공무원을 사살한 북한에는 큰소리 못 치면서, 사살당한 사람이 문제라고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에 분명한 답을 내놔야 한다. 둘째, 시신 훼손이라던 주장이 화장이라고 미화되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시신 행방불명으로 뒤집어지는 형세다. 북측의 설명에 따라 해경이 수색에 나서는 모습이 가련할 정도다. 시신을 40분간 불태웠다는 당초 국방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시신 훼손 증거 확보설에 왜 청와대가 나서서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것은 북한이 설명할 사안이다. 북한도 인지하고 있는 정찰자산을 공개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정찰자산이 있다는 게 우리 국민을 안심시키는 자랑일 텐데 말이다.

셋째, 6시간 동안 왜 북한과 소통해 국민을 구할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사실을 인지하고도 국민을 구하지 않았다면 책임 방기이자 직무유기다. 청와대와 김정은 간에 친서를 교환하는 루트는 있는데, 국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긴급 소통 채널은 작동이 안 된다고 하면 상식 있는 국민은 모두 고개를 저을 것이다. 넷째,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려면, 공동조사를 통해 북한에 정식 사과를 요구하고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을 물어야 마땅하다. 북한의 서면 사과 통지문 정도에 김정은을 계몽군주로까지 치켜올리는 사대주의적 발상이나, 사과로 전화위복이 됐다는 발언은 국민의 생명 보호를 최고의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에 어긋난다. 사살한 쪽을 치켜세우면서 사살된 국민은 감싸지 못하는 태도를 일반 국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북한의 비위만을 맞추고 북한의 말만 믿는다면 그것은 이적(利敵)행위다.

북한의 반인륜적 만행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 왜 우리 정부가 북한과 종전선언을 합의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국민을 보호하는 정부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물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17년 자진 입북한 자국민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구하기 위해 비밀 협상도 마다하지 않았고, 조지프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양을 직접 방문해 혼수상태이던 그를 송환해 갔다. 정부는 평화 타령을 할 때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한민국의 결의를 분명히 표명해야 할 때다. 평화는 구걸한다고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