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빈 교수](경제시평) 틱톡 사태가 주는 시사점 (국민일보 2020.9.29)


Publications by Faculties
2020-09-29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자유시장경제가 꽃피울 수 있는 근간은 바로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는 사유재산제도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마련한 은행 잔고, 자동차, 혹은 주택이 하루아침에 이웃 건달의 손에 넘어가거나 수십년 동안 일군 기업이 국가의 소유로 강탈될 수 있다면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경제활동에 참가하려는 동기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쇠락한 반면 자본주의 국가들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금은 당연시 여겨지는 사유재산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공고해진 것도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70∼80년대에도 자고 나니 공중분해됐다는 대기업의 사례, 토지가 국가에 강탈됐다는 사례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예전처럼 투박하고 노골적인 형태로 국가가 재산을 강탈하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시대가 됐다. 다수의 외국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제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시장에 법인을 설립하고 공장을 건립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사안은 다름 아닌 사유재산제도 확립 여부다. 하루아침에 공장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면 누가 그 나라에 공장을 설립하겠는가. 미국만큼 순도 높은 자유시장경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드물다. 미국이 세계 최고 경제대국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북유럽이나 프랑스 등과 비교해도 기업의 사적 이익 추구가 고귀하게 평가받는 미국의 기업 환경은 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망 기업가들이 미국에서 기업 경영을 하면서 축적한 경제활동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몰려든 전 세계 이민자들과 함께 지금의 미국을 만든 동력이 됐다.

그런데 지금 다른 곳도 아닌 미국에서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에 균열이 생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국민의 개인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구심 속에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계 기업인 틱톡의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이를 피하기 위한 조건으로 오라클과 월마트 등에 20%가량에 해당하는 지분을 넘기도록 했다. 정보기술(IT) 전문가도 아니고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도 아닌 입장에서 틱톡이 수집하는 개인정보가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번 사례가 글로벌 해외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이 우려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의 선례는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정당성을 확보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도 마냥 강 건너 불구경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무역규제 조치를 남발한 트럼프 행정부의 전례를 방패막이 삼아 우리나라에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한 일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미국으로서는 자기부정을 피하기 위해서도 일본의 수출규제가 국가안보 조치이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본으로서는 믿는 구석이 있었던 셈이다. 미국도 했으니까 자기들도 한다면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틱톡 사태에 대한 분풀이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재산권이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침해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미 현지화가 다분히 진행돼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일본의 카카오톡으로 불릴 정도로 메신저 시장을 장악한 네이버 라인의 지분 일부를 일본이 국가안보를 위해 일본 기업에 넘기라는 요구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력을 키우는 것만이 정답일 텐데 우리는 오늘도 정쟁에 여념이 없다.

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58200&code=1117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