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 자멸한 日민주당 정권의 데자뷔 (문화일보 20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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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6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4·15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권한 행사는 무소불위다. 그런데 현 정권의 정책 지향성을 보면 일본 민주당 정권과 닮은꼴이다. 2009년 총선에서 무려 308석(중의원)이나 되는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던 일본 민주당은 총체적 정책 실패를 겪고 2012년 총선에서 57석이라는 초라한 모습으로 정권에서 물러났다. 일본 민주당 정권의 실패를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일본 민주당은 ‘평화’를 앞세웠다. 미국과는 대등한 미·일 관계를 외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이라는 이상을 내걸었다. 자민당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이 흔들어놓은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2010년 중국과 센카쿠(尖閣)열도 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이 유례없는 경제보복을 가하자 동아시아공동체라는 꿈은 거품처럼 사라졌다. 선의를 가지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했던 중국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한반도 평화공동체’를 주장한다. 비핵화라는 현실 과제는 뒤로한 채 북한과의 평화·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체의 건설에 몰입하고 있다. 포탄이 떨어져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이 정의롭다고 말할 만큼 이상주의적이다. 그 사이에도 북한은 핵 능력을 키우고 있다. 평화의 파트너라고 믿는 북한에 버림받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만약에라도 철석까지 믿고 있는 한·미 동맹까지 흔들리게 된다면 국가 안보를 어떻게 유지할지 걱정이다.

일본 민주당은 ‘사람을 우선하는 복지’를 내세웠다. ‘콘크리트로부터 사람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생활이 제일’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와 아주 근사하다. 일본 민주당 정권은 국가 재정을 총동원해 영유아 육아수당 지급, 고교무상교육,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농어촌 소득보전 등 다양한 무상복지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문제는 9조 엔(90조 원 상당)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업재분류’라는 사실상 관료 인민재판을 통해 예산을 여기서 저리로 옮겨 담았다. 그래도 예산이 모자라자 ‘소비세 인상’이라는 악수를 꺼내 들었다. 조세저항 때문에 일본 민주당이 정권을 내놓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문 정권도 국가 예산을 대량 투입한 무상복지, 무상배분을 통한 총수요 증대 정책을 펴고 있다. 수조 원의 예산이 단 며칠 사이에 국회를 통과한다. 세수가 더 필요하다 보니, 법인세, 소득세 인상으로도 모자라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라는 세금 폭탄을 퍼붓고 있다. 소비세만 빼고 다 올랐다. 서민들의 주택 수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실현되지도 않은 부동산 이익을 정부가 감정해 세금 거두기가 먼저다. 현 정권도 국민의 조세저항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조세 부담은 젖은 옷처럼 무겁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고 후쿠시마(福島) 원전이 마비되자 일본 민주당은 ‘탈원전’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멀쩡한 원전도 모두 가동을 멈췄다. 하지만 그 결과 가스와 LNG 수입이 증대됐고, 화력발전소 가동률을 높여야 했다.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 국민에게 거듭 절전을 부탁해야 했다. 문 정권은 원전 사고가 없었는데도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탈원전’에 나섰다. 친환경 에너지라며 태양광 발전을 여기저기 시도하면서 산지·농경지 등이 난개발되는가 하면, 잘나가던 전력 생산 기업은 죽이고, 오히려 태양광 패널을 수출하는 중국 기업들만 배부르게 만들었다. 환경을 보호한다면서 자연을 훼손하거나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발전 비율은 높이고, 비싸면서도 공급 안정성은 낮은 에너지 믹스를 선택했다. 한국의 원자력 산업을 질식시키면서 점점 고비용 에너지 공급체계로 전환하는 게 과연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민심은 변하게 마련이고 영원한 정권은 없다. 여론은 권력의 배를 띄우기도 하고 침몰시키기도 한다. 여론과 민심은 생활 이슈에 특히 민감하다. 부동산, 교육, 조세와 같은 전 국민 관심사를 정파적으로만 다루고 편을 가르면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오만과 아집과 무모함은 정치가의 무덤이다. 거대 여당이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정책 대안도 없는데 소통까지 안 되면 민심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몰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