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빈 교수](경제시평) 불확실성 속의 경제정책방향 (국민일보 20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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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1

코로나19 방역체계가 생활방역으로 전환되면서 국내 감염의 심각한 고비는 일단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방심은 금물이지만 향후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은 우리 손을 떠나 미국과 유럽, 그리고 신흥지역 국가의 확산 상황에 달려 있게 됐다. 경기 침체 규모와 지속 정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금처럼 외부 요인에서 오는 상황에서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정책 대응은 주요 국가들의 경제정책에 선별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반보 늦게 발맞춰 나아갈 필요가 있다. 반보 늦은 정책 대응의 효과적인 예로, 국내 감염이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 2월 금리 동결을 결정한 후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에 맞춰 한국은행이 임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낮춘 것을 들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은의 실기론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초저금리 시대의 통화정책 작동 원리를 이해한다면 이 같은 비판은 설득력이 낮다. 최근과 같은 초저금리 수준에서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실물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전통적 경로보다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통화 당국의 의지를 표명하는 시그널링 경로를 통해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금통위의 효과적인 정책은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에 화답하는 것이었다. 2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낮췄다면 이미 그 효과는 사라지고 시장은 연준 결정에 따른 후속 대응을 추가로 요구했을 것이다. 이 경우 금통위는 금리 인하 여력이 소진돼 마땅한 방안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현재 관계 당국에서 논의하고 있는 비우량 회사채 매입과 관련해서는 한은이 조금 앞서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이 방안은 연준의 회사채 매입 결정에 자극받아 한은이 금기를 깨고 민간 기업 회사채를 직접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연준이 회사채 매입을 결정한 목적은 기업 부도를 막아 실물경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 있다기보다 회사채에 위험이 노출된 금융시장 붕괴를 피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미국 금융시장에서는 회사채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가 이뤄졌다. 이에 기반한 파생상품 시장 특성상 지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마찬가지로 어느 기관이 어느 정도의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는지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기업 부도가 초래할 또다른 금융위기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중앙은행이 직접 회사채를 매입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일부에서 폄하하는 금융산업 ‘후진성’ 덕분에 금융 당국이 기업 대출 및 회사채 매입에 관련한 금융사의 리스크를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다. 기업의 자금 경색을 해소해 실물경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라면 한은이 스스로 금기를 깨면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금융사를 통한 간접적 지원을 통해 정상적 범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정책 당국이 냉정하게 자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보다 한 달가량 늦은 1분기 막바지에 감염이 확산된 미국과 유럽 지역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각 4.8%, 3.5% 감소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1.4% 떨어지는 데 그쳤다. 이 사실이 위로하는 바는 크지만 ‘최악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정책 당국의 경고는 우리가 마주한 불확실성의 공포를 일깨워준다. 초유의 사태를 맞아 정책 대응 또한 상식을 뛰어넘는 선제적이고 획기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도 있겠지만, 해외 정책 사례를 무분별하게 도입해 불필요한 후유증을 유발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섣부른 대응으로 추후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