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빈 교수](경제시평) 진정한 의미의 규제 개혁 (국민일보 20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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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4

[경제시평] 진정한 의미의 규제 개혁


언제부터인가 규제 철폐 혹은 규제 완화는 규제 개혁의 또 다른 이름으로 통용돼 오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필요한 규제는 신설하거나 강화하고, 불필요하고 낡은 규제는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올바른 규제 개혁의 방향이다. 하지만 규제의 폐해와 관련된 부분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규제의 부재가 낳을 혼란은 쉽게 간과된 채 새로운 규제 도입은 곧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비치곤 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한 마스크 대란은 시장경제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규제의 필요성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현 상황에 소비자로서 마스크를 하나라도 더 구입하려는 욕구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와 같이 마스크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때 유통업자 입장에서 미리 사재기를 하고 나중에 높은 가격에 팔고자 하는 매점매석 행위 혹은 생산 업체 입장에서 폭리를 취하는 행위 또한 경제학적으로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윤추구 행위다.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명제는 결국 마스크 가격 폭등과 마스크 소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정부가 직접 개입해 마스크 수급 안정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점 자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유다.

지난 한 주간 반복된 글로벌 주식시장의 급등락 현상 또한 거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유약해지는 시장의 모습을 방증한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공매도 제도는 가격조정 등의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요즘같이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는 과도한 불안심리를 증폭시켜 경제 위기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잠재적 불안 요소를 시장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면,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기는 하지만, 금주부터 시행된 공매도 금지라는 전면적인 규제 조치를 통해 한시적으로나마 제거해주는 것이 사전적으로 바람직할 수 있다.

지난 수개월간 연이어 터진 일부 사모펀드들의 환매 중단 및 손실 사태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제도를 도입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부터 예견됐다고 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배경에는 미국에서 이전 20여년간 이어진 금융 규제 완화가 있었다. 이후 소위 금융 선진국들에서조차 앞다퉈 금융 규제 강화를 시도하던 시기에 이뤄진 한국형 헤지펀드에 대한 전폭적 규제 완화는 오히려 시대를 역행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정상적인 투자상품들에서도 부실 채권이 속출하고 파생상품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지만 깜깜이 투자의 특성상 이제 와서 금융 당국이 예방하는 조치를 시도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처럼 해당 규제의 필요성 여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세계적 경제 사상가인 장하준 교수가 강조하듯 사회공동체가 공유하는 ‘시장’의 정의나 ‘규제’의 영역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핀테크, 공유경제 등 이제는 한 묶음으로 있을 때 더 친숙한 이들 키워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개념들이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시점에서 혁신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는 장애물 제거를 위한 규제 철폐 및 완화뿐만 아니라 안전망 설치를 위한 규제 신설 및 강화 또한 포함돼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올바른 규제 개혁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