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힘에 의한 평화 추구해야 북한도 진정한 대화 나선다 (중앙일보 20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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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4

[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힘에 의한 평화 추구해야 북한도 진정한 대화 나선다

세 가지 평화 개념과 한반도

문재인 정부는 남북 경협과 비핵화 협상 등에 나섰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힘에 의한 평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왼쪽부터 2018년 12월 북측 판문역에 북측 열차와 나란히 선 남측 열차, 2019년 10월 북한 원산만에서 발사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 3호, 2017년 7월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1B 랜서(위)와 한국 공군 F-15K.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는 남북 경협과 비핵화 협상 등에 나섰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힘에 의한 평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왼쪽부터 2018년 12월 북측 판문역에 북측 열차와 나란히 선 남측 열차, 2019년 10월 북한 원산만에서 발사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 3호, 2017년 7월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1B 랜서(위)와 한국 공군 F-15K. [중앙포토]

평화라는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다. 갈등과 긴장이 감도는 한반도에서 평화는 우선순위가 높은 목표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평화를 달성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세 가지 평화의 개념화를 통해 실현 가능성(feasibility)과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핵·미사일 무장한 북한 용인하는 건 굴종
북한 요구에 끌려다녀선 평화 이룰 수 없어
선의에 의지한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아
힘이 강할 때 우리 주도로 평화 이룰 수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평화의 개념은 ‘반전 평화’다. 평화는 전쟁의 방지 또는 부재를 의미한다. 북한의 핵 개발, 미사일 실험으로 한반도에서의 갈등이 고조된 2017년 말 미국이 북한을 향해 ‘코피 작전’(Bloody Nose Strike) 운운하며 한반도에서는 다시금 전운이 감돌았다. 문재인 정권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8년 초 열린 평창 동계 올림픽을 활용해 남북한 간 평화 분위기를 만드는 한편, 미·북 중재 역할을 수행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막고자 했다. 반전 평화가 정책의 주춧돌이었다.
 
반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두 가지 정책을 추진했다. 하나는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면서 제재 완화를 통한 ‘신 한반도 경제 지도’ 완성을 통해 남북 갈등을 해소하고자 했다. 또 하나는 미·북 중재자 역할 수행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위한 진전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화 정착 노력은 북한이 자력갱생 노선을 내세우며 미국과 정면대결을 불사하겠다는 ‘새로운 길’ 채택을 선언하면서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몇 가지 전제가 흔들리는 데서 기인한다.
  
한국은 북한 비핵화에 운명 걸어야
 
첫째, 북한 핵무장을 외부 위협에 대한 북한 체제 수호라는 수세적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고, 외부 환경만 개선해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전제였다. 그러나 북한은 단지 한·미·일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지켜내는 ‘방어와 수비’ 논리만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들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라는 적극적 목표 달성과 비핵화를 연결하고 있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북한은 한국 안보의 기축인 한·미동맹을 약화하고 나아가 이를 해체하는 방식을 통해 자국 안보를 강화하고자 하는 꿈을 접었다고 할 수 없다.
 
둘째, 평화를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우위에 선 한국이 빈곤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방식을 통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해내야 한다는 전제다. 경제적으로 한국이 앞서 있다는 점에 토를 다는 이는 없다. 다만, 군사 분야에서도 한국이 북한에 한 수 위라는 전제는 재고돼야 한다. 재래식 전력 면에서는 한국이 한 수 위이지만, 북한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핵전력, 미사일 전력이라는 비대칭 억지 전략 구사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달성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을 지원하는 미국·일본과의 연계 차단을 통해 한국에 대한 군사 우위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미국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핵 문제의 해결은 미·북 간 대화와 협상에 맡겨야 한다는 전제다. 이는 한국이 북한 핵 문제의 당사자라는 인식을 내려놓은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단지 중재자나 촉진자 역할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운명을 걸어야 하는 것은 미국 행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여야 한다. 북한의 핵을 이고 사는 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됐다고 선언하는 것은 가식일 뿐이다. 그것은 가짜 평화다.
 
‘비핵 평화’는 한반도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을 용인한 상태에서의 한반도 평화는 ‘굴종의 평화’다. 반전 평화 노선을 앞세우는 주장이 비핵 평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핵 평화 달성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 없이 한반도 평화 불가능
 
먼저, 문제의 핵심이 ‘조선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라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의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수사는 외세를 몰아내고 한민족끼리 안보를 논하자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의 해체를 통한 군사안보 우위 달성을 의미한다.
 
둘째, 비핵화를 ‘출구’에 놓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요구를 들어준 뒤 ‘출구’에서 비핵화를 논하는 것은 북한의 속임수를 허용할 수 있다. “대북 제재를 완화해 준다면 비핵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주장은 우선 북한을 옥죄는 제재부터 해제하고 비핵화를 논하자는 발상이다. 비핵화가 허구일 경우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지렛대(레버리지)만 상실하게 된다.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편의주의적 구두 약속을 하고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모른척하거나 약속을 저버린 과거의 행태를 벗어났다는 증표는 아직 없다. 어려우면 협상에 나오고 맘에 안 들면 칩거하는 화전 양면전술을 포기했다는 확증도 없다. 상호 검증 가능한 행동 대 행동의 교환이 필요한 이유다.
 
셋째, 비핵 평화는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포기뿐만 아니라 핵무기 생산시설, 기존에 생산된 핵무기, 핵무기 제조능력을 포함한 포괄적 비핵화이자 완전한 비핵화여야 한다. 영변의 핵시설 파기가 의미 있는 비핵화의 시작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지만, 영변만 포기하면 북핵은 완성에 가깝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비핵 평화는 남에게 맡기거나 중도에 타협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검증 가능한 완전한 비핵화가 없는 한 한반도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미 훈련 연기·축소·중지는 평화 약화시켜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힘에 의한 평화’다. 문재인 대통령도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빈말만으로 힘에 의한 평화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방비만 늘린다고 군사력이 증대되는 것도 아니다. 힘에 의한 평화는 한국이 우세한 군사력과 외교력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지금과 같이 북한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거나 축소 또는 중지하는 방식은 힘에 의한 평화를 약화할 수 있다.
 
또 통일부가 평화를 외칠 수 있지만, 국방부는 군사적 대비 태세와 힘의 우세를 확보할 수 있는 준비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정찰 감시 능력의 강화,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응 체제의 다양화, 유사시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 능력의 확보, 동맹 및 우호국과의 정보 협력 체제의 상시화, 북한 목표물에 대한 정밀 타격 능력 향상, 북한군의 정보 차단 및 전자전 능력의 상쇄 등 한국이 힘써야 할 분야는 산적해 있다.
 
한국이 힘에 의한 평화를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북한은 진정성 있는 대화와 협상에 나설 것이다. 상대방의 선의에 의지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힘이 강할 때 비로소 평화는 우리의 주도로 이룰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힘에 의한 평화’는 평화의 충분조건이다.
 
■ 키워드

코피 작전(Bloody Nose Strike)
북한이 화성-14형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미국은 2017년 북한 풍계리 핵 실험장이나 ICBM 발사장 등 한 두 곳을 상징적으로 때리는 코피 작전을 검토했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에 대해 제한적 타격을 가함으로써 북한에 미국의 군사 행동 의지·능력을 확인시키려는 작전이다.
 
조선반도 비핵화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요구에 대해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내세운다. 한국에도 핵무기가 반입·배치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북한은 미국 핵무기를 탑재한 항공기·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이 한국에 와서 안 된다며, 이의 연장 선상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미국의 핵우산 제공 중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학연구소장

[출처: 중앙일보] [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힘에 의한 평화 추구해야 북한도 진정한 대화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