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치)Interview 이근 “소프트파워로 對韓 우호여론 조성… ‘한국은 강대국’ 인식시키겠다” (문화일보 20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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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4

■ ‘공공외교 선봉장’ 이근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20세기초 전쟁 통해 강대국 인정 … 지금은 이미지 창출 중요
새로운 韓·美 관계위해 차세대 교류 늘려야 하는데
단군이래 가장 똑똑한 2030이 586세대에 막혀있어 답답

美인사들과 ‘네 생각은 틀렸어’ 싸우듯 논쟁했던 건 잘못
공공외교는 협상보다 네트워크 축적 위한 씨뿌리기가 우선
敵 위협에 같이 대처 넘어 ‘미래 같이 만들자’는 게 모토


올 들어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하고 일본에서 ‘혐한’ 분위기도 거세지면서 한국의 외교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덩달아 정부의 대외정책과는 별개로 문화·학술 등 ‘소프트파워’(연성권력)를 중심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우호적 외교환경을 조성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공공외교 전략 수립·집행 임무를 부여받고 9월 말 취임한 이근(56)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이사장은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국가이익을 반영하면서 미국 내 진보·보수를 다 잘 관리해야 한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를 같이 만들자(Making Future Together)’고 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 이사장은 “20∼30대는 단군 이래 가장 뛰어난 세대인데, 586세대에 막혀 있다”면서 “정치적으로도 풀어야 하지만 외교 영역에서도 한·미 간 차세대(Next Generation) 교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2004∼2007년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미국 인사들과 싸우듯 논쟁했는데, 그 방식은 잘못됐다”면서 시행착오도 인정했다. 이 같은 실수를 교훈 삼아 이 이사장은 오는 2021년 재단 설립 30주년을 앞두고 오랜 소신인 한국의 ‘강대국 클럽’ 가입을 목표로 한 가칭 ‘공공외교 프로젝트 2021’을 구상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국제교류재단 서울사무소에서 열렸다.

―한국의 공공외교가 정부 입장만 너무 강하게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시절 미국 워싱턴DC에 자주 출장을 갔다. 당시 40대 초반이었는데, 젊은 혈기에 미국 인사들과 논쟁하면서 ‘너 그거 틀린 생각이다’고 많이 말했다. 당시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였는데, ‘당신들 생각이 글로벌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막 질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접근법이었다.”

―지난해 미국 한미연구소(USKI) 폐쇄에서 보듯이 재단 지원을 받은 일부 싱크탱크의 편파성을 문제 삼는다.

“공공외교 관점에서 보면 일관성을 가지고 국가이익을 반영하면서 미국 내 진보·보수를 다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교부에서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분들도 공공외교를 협상같이 생각한다. 한·일 관계 나빠졌다, 한·미 관계 나빠졌다 하면 우리 보고 가서 풀고 와라 이렇게 한다. 하지만 협상은 싸우고 어르면서 정해진 기간 안에 결과를 도출해 내지만, 공공외교는 그렇지 않다. 분위기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깔아두고 씨앗을 뿌리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학술외교나 협상은 현지인들과 논쟁하고 그러면 될지 모르지만, 공공외교는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잘못된 공공외교다. 일이 되게 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너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보다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10월 25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2회 공공외교주간’을 성공적으로 주최했다는 평가가 있다. 신임 이사장으로서 강조점이 있다면.

“모토 중 하나가 주요국들과 함께 ‘미래를 같이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의 우호적 관계를 잘 관리하고, 공공의 적으로부터의 위협에 같이 대처하자는 것은 현재 중심적이다. 진정한 파트너는 미래를 같이 만들어 나가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미래를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어젠다(의제)를 내세우고, 양국 간 파트너를 연결시켜 준다. 그러면 차세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2016년 발간한 저서 ‘도발하라: 닥치고 따르라는 세상에 맞서는 힘’에서도 젊은 세대에 대한 기대가 크더라.

“우리 20∼30대 젊은이들은 단군 이래 가장 뛰어난 세대라고 생각한다. 창의성과 합리적 사고도 잘한다. 문제는 이들이 나 같은 586 이상의 윗세대에 막혀 있다는 것이다. 586세대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이 젊은 세대를 막고 있다. 또 한국 사회는 신분 사회 비슷하게 봉건화·전근대화돼 있다. 이 문제를 우리가 국내 정치적으로도 좀 빨리 풀어야 한다. 그래야 외교 영역에서 한·미 양국의 젊은 세대가 함께 네트워크와 어젠다를 구축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게 미션(임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네트워크 이론이 지적하고 있는 네트워크 허브(hub·중심)를 한·미의 젊은 세대에게 연결해주는 게 중요하다.”

―대미 공공외교에 대해서는 과하다, 부족하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절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공외교가 그나마 비교적 자유롭게 이뤄지는 강대국 중 하나가 미국이다. 미국은 제도적으로도 공공외교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도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가 외국이 미국에 침투할 수 있는 제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워싱턴에서 한국의 공공외교가 일본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일본과 한국의 공공외교를 언급하면서 한 해에 얼마나 돈을 쓰고 얼마나 많은 인력을 갖고 있느냐로 비교하는데 이는 잘못됐다. 일본은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 국가로서 외교를 시작했기 때문에 관·정·학계가 한꺼번에 외교를 했다. 일본 재벌은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깔아 오랜 기간 축적해 왔다. 반면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활동을 시작한 게 88서울올림픽 전후다. 그래서 일본의 축적량을 빨리 따라잡을 수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기관별 중복투자도 문제가 있다.

“내부적으로도 중복투자를 정리하는 것은 너무나 필요하다. 특히 외교·안보 쪽에서 그렇다. 언제인가 워싱턴을 방문했는데, 동시에 워싱턴을 방문한 기관이 한 주에 5∼6개나 됐다. 맨날 똑같은 사람을 만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온다. 회의 결과도 공유가 안 된다. 이는 첫째 전략적 사고가 없는 것이며, 둘째 조정(coordination)이 안 된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중복투자로 세금이 낭비된다는 것이다. 전략적 사고를 하려면 공공외교 디자인이 문제인데, 이 부분이 매우 약하다. 공공외교는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느냐, 메시지를 통해 어떤 여론을 조성하고 오느냐가 관건인데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자기 이야기만 하고 온다. 반면 삼성과 SK 등 민간기업의 네트워크가 어마어마하다. 이런 자산을 정부와 함께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일본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공공외교 전략은.

“한·일은 백(back) 채널을 이용했던 게 과거 공공외교의 핵심이었다. 대표적인 게 한일포럼이다. 이제는 한·일 관계에서도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역시 차세대로 가야 한다. 일본 사회가 보수적인 편이기 때문에 기존의 한일포럼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차세대 채널을 만드는 게 목표다. 한·일의 라이징 스타(떠오르는 샛별)를 모아서 새로운 트랙을 만들려고 한다. 중국은 좀 어려운데, 당장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기에는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설립 30주년인 2021년을 대비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구체적 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다. 다만, 내가 예전 칼럼에 한국도 강대국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북한을 비롯해 많은 국가가 강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꿈이 항상 ‘캐치업(따라잡기)’이었고, 강대국 꿈은 한 번도 꾸지 않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전쟁에서 한판 붙어 이기면 강대국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전쟁을 못한다. 지금 강대국이 되려면 ‘강대국 클럽’에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지금은 강대국이 인식의 세계에 해당된다는 데 있다. 우리가 선진국인 동시에 강대국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한·일 관계도 일본이 우리가 자기들과 대등한 강대국 클럽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변할 것이다. 한국이 강대국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와 여론 조성, 이미지 창출 등이 제가 하고자 하는 비전 중 하나다. 결국 이는 공공외교 영역인데, 돈도 뒷받침돼야 하고 외교부서도 같이 뛰어야 가능하다.”

―결국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함께해야 할 것 같은데, 문재인 정부의 생각과는 좀 다른 게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게 근대화, 민주화, 평화라는 가치다. 한·미 동맹과 평화가 다소 부딪힐 때도 있지만, 문 대통령도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강대국 클럽에 가입하면 현재로서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중국이 잘 정착할 수 있게 관여(engage)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산업화·민주화·선진화 등을 이루면서 국가적 꿈이 사라졌는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처럼 우리에게도 ‘한국몽’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에게 강대국 비전을 심어주면 합심해서 잘할 것이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

△1963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석·박사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소장 △세계경제포럼 한국 협의회 의장 △서울대 국제협력본부장 △제13대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