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공공성은 상대평가 대상이 아니다 (경향신문 201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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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정동칼럼]공공성은 상대평가 대상이 아니다

자기가 맡은 자리와 위치에서 소임과 본분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대사회에서 ‘자리’와 ‘위치’라는 것은 일단 공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즉 사유화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개인이 일군 기업에서 사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그 기업이 1인 기업이 아닌 한 그 사장 자리도 기업 내에서 공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다른 사람보다는 많은 권한을 갖게 되지만 그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사장 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사장 자리에 있다고 해서 기업을 자기 마음대로 막 할 수 없다. 교수라는 자리도 대학 내에서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회사에서 과장, 부장, 임원 등의 자리도 모두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여기서 공적인 성격이 의미하는 바는 그 자리는 그 자리가 부여된 제도나 기관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교수는 대학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이고, 사장은 기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이며, 부장, 임원 등도 기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이다. 

너무나 분명하게도 공무원이라는 자리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건 ‘늘공(늘 공무원)’이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그 자리와 위치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적인 이익이나 사적인 욕구를 충족하려 하면 안된다. 이런 경우 공사구별이 안된다고 표현한다. 교수가 교수라는 자리를 이용하여 학생들을 사적으로 부리고, 그 자리를 징검다리로 하여 권력이나 재물을 추구하면 학교라는 곳이 원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교수는 교수의 원래 기능에 충실해야 하는 자리이다. 즉 연구하고 교육하는 자리이다. 본인의 연구가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어 회사나 국가의 자문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래 교수의 기능 외적인 부의 영역이지 주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이 주의 영역이 되면 컨설팅 회사나 기업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공무원으로 빨리 자리를 옮기는 것이 학교를 망치지 않는 길이다. 진정한 학문의 발전은 정체되고, 불쌍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내팽개쳐진다. 기업의 과장, 부장, 임원 등의 자리도 각기 맡은 바 소임과 기능이 있다. 그 자리를 이용해 사적인 영리를 기업 안에서 추구하거나, 부하 직원을 회사의 일과 관련이 없는 일로 부리고 괴롭히면, 회사에 해를 끼친다. 회사의 배임과 횡령이 강력하게 처벌되는 이유도, 상사의 부하 직원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처벌되는 이유도 모두 자리가 사적으로 이용되어 회사에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기자들도 정확한 사실을 취재해서 보도하는 것이 본분이지만, 기자라는 자리를 이용하여 사적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면 이는 언론사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를 망가뜨리게 된다. 왜곡된 보도나 선동적인 보도를 통하여 몇몇 사람은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국가와 사회라는 공간의 정보 유통이 혼탁하고 망가져 사회에 심한 해를 끼치게 된다. 국가 공무원이 자리를 이용하여 개인의 영달과 재물을 추구하면, 공공성이 파괴되어 국가의 기능이 왜곡되고, 심한 경우에는 나라가 흔들린다. 많은 저개발 국가의 부패한 독재정권이 바로 국가의 공적 자리를 이용하여 개인의 권력과 욕망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과 2017년의 촛불혁명은 바로 이러한 공사 구별이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에 공공성을 찾기 위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공공성 회복, 즉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바로 촛불정신이었다. 정권이 아니라 이권을 잡는 정치세력, 국가를 사랑방으로 만드는 정치세력,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총수들이 존재하는 나라, 공적 자리로 갑질하는 기득권이 활개치는 나라가 아니라 각기 자리에서 맡은 바 공적인 소임을 다하는 그런 전문적이고,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리라는 권력을 획득하여 사유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리를 통해 제대로 일을 하려는 것이 목적인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가? 공적 영역의 가장 큰 그릇인 국가에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맡은 바 소임과 책무를 다해야 할 큰 짐을 떠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가지면 사회는 혼돈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국가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아무리 우리 편이라도 공공의식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모자라면 중요한 곳으로 가면 안된다. 나라가 망가지면 결국 우리 편도 망가진다. 국가의 요직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공공의식과 전문성, 그리고 국가가 지향해야 할 공공성의 기준은 이전 정부와의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치를 놓고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지금 공공성의 회복을 외친 촛불마저도 사유화하려는 세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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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292040005&code=990308#csidx7b51c167c8e3968bc7ec672164e00d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