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우리는 강대국이 될 수 없을까? (경향신문 20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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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6

[정동칼럼]우리는 강대국이 될 수 없을까?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 나라가 근대 국제정치에 정통성을 가지고 참여하기 위해선 근대국가라는 국가를 성립시켜야 한다. 테러단체나 과거의 전근대적 왕조국가를 지금 국제정치의 합법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정치를 힘이 좌지우지하는 무정부상태로 인식하지만, 일단 국제정치에서 한 국가가 ‘근대국가’를 만들어내면 최소한의 대접은 받게 된다. 또 일반인이 동경하는 힘 있는 국가, 즉 강대국도 꿈꿔볼 수 있다. 현재 국제정치에서 근대국가보다 더 힘이 센 국제정치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근대국가라는 체제가 다른 어떤 체제에 비해 정당성뿐만 아니라 힘을 동원하는 능력이 크다. 북한이 아무리 미워도 최소한의 대접을 받는 이유는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에서 근대국가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했고, 또 상호 수교를 한 국가들도 꽤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 힘의 동원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근대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하였다면 국가자원을 동원하여 핵무력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만큼 근대국가체제는 근대 이전의 다른 국가형태에 비해 우월한 체제이다. 

이러한 배경하에, 근대 이후 어느 국가이든 자신의 근대국가체제를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앞서고, 강하고, 바람직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해 왔다. 우리는 구한말 이러한 추세를 지도층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에 일본이라는 근대국가 안으로 강압적으로 빨려들어가는 불행을 겪었다. 반면 일본은 그 국제정치 추세를 정확히 읽어내어 근대국가체제를 신속히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메이지 유신이라는 미래 구상을 통하여 국가적 힘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즉 강대국을 만들었다. 당시 전근대의 최강국이었던 청나라를 격파하였고,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힘을 갖추었다. 국토의 크기 및 백성의 숫자와 상관없이 근대국가체제와 그렇지 못한 체제의 능력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도 유럽의 끝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섬나라였지만, 일찍이 근대국가체제를 만들어 세계 최강의 지위를 누렸을 만큼 근대국가체제를 언제 어떻게 만드느냐가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위치를 정해주었다.

그래서 근대 국제정치의 세계는 근대국가의 설계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책무였다. 흔히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근대국가의 설계가 백년대계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의 강대국이 지금도 강대국인 것을 보면 그 백년대계를 실감할 수 있다. 백년대계가 반드시 100년 후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미래를 염두에 두는 지도층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지도층이 있는 나라는 구한말 대한제국과 같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라도 지키기 어렵다. 

우리 대한민국도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전 국민의 노력과, 세계사의 운을 함께 타면서 이제 세계굴지의 근대국가로 발전하였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G20이라는 그룹에도 들어가 있고, 선진국의 모임인 OECD에도 가입했다. 세계에 7개국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3050클럽, 즉 인구 5000만명 이상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국가클럽에도 들어갔다. 우리 군사력은 세계 7위 안에 들어가고, 인적자원과 기술수준을 포함한 경제력도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다. 동계 및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모두 유치한 몇 안되는 조직력을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한류를 대표하는 K팝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수준의 실력을 가질 만큼 뛰어난 문화적 역량도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우리는 한 번도 ‘강대국’의 비전을 가진 적이 없고 아직도 중견국에 만족하고 있다. 국가의 외교에는 적응의 외교와 극복의 외교가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라는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 있어서 적응의 외교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고 균형을 잡아 생존을 모색하는 약소국 혹은 중견국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지정학적 현실을 극복하는 외교는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같이 강대국을 지향하는 외교와 비전이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강대국이 되고픈 열망이 있다. 하지만 정작 강대국 비전과 백년대계를 제시하고 끌고 가려는 지도층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 대해서도 의병정신과 이순신정신만을 얘기하고 있다. 이제 이를 넘어서야 한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에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진정한 극일은 일본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역량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선 지정학을 극복하는 강대국의 꿈이 있어야 한다. 지도층은 국민들에게 금모으기 정신을 강요할 게 아니라, 힘과 도덕적인 면에서 모두 인정받는 강한 국가 만들기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힘을 모아달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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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012045015&code=990308#csidxc13b9e26dd76e0389b5ded11258ca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