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 포럼)이번 韓美회담에서 절대 피해야 할 일 (문화일보 20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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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오피니온](포럼) 이번 韓美회담에서 절대 피해야 할 일

오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피해야 할 시나리오가 있다.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북한이 요구하는 방안을 미국에 설득하려 하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북한이 애타게 요구하는 제재 완화를 북한 대신 요구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한·미는 먼저 비핵화의 전체상과 종착지 그리고 비핵화 과정의 로드맵에 대한 이견 없는 합의를 이뤄야 한다. 미국에서 한국이 ‘북한과 미국 중 어느 편이냐’는 이야기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미국에 확실한 신뢰를 주는 것이 이번 회담의 중요한 역할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것처럼 보는 보도도 있지만,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에 있어 두 사람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똑같은 의견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주장하듯이 ‘영변의 핵시설만 파괴하면 한·미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 한국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에 동의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은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의 1차 당사자다. 미국과 북한이 주저하더라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가장 강하게 주장해야 하는 것은 한국이어야 한다. 북한과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본 상태에서 단계적인 접근을 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영변에서 한 번 종착점을 끊고 상황을 보면서 다시 진행하자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한·미 양국은 이번에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에 대한 빈틈없는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이를 북한에 설득해야 한다.

동맹은 늘 강건한 것 같지만 한순간에 흔들릴 수도 있다. 일본의 경험은 타산지석이다. 냉전이 종결된 후 1991년에 치러진 걸프전쟁에서 일본은 미국이 요구하는 전쟁부담금을 찔끔찔끔 천천히 내다가 130억 달러라는 거금을 내고도 미국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폭격을 진지하게 준비한 적이 있다. 이때 미군이 주둔하는 일본이 실제로는 작전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동맹에 대한 회의론이 나왔다. 일본의 안보만 보장하고 미국에 도움이 안 된다는 회의론이 ‘동맹 표류’로 이어졌다. 

결정타를 가한 것은 1994년 발행된 ‘히구치(Higuchi) 보고서’에서 일본이 미·일 동맹보다 다자안전보장을 우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서였다. 동맹 폐기까지 들먹거리던 위기는 1995년 ‘나이(Nye) 리포트’가 나오면서 일단락됐다. 1990년대 세 번에 걸친 미·일 동맹의 흔들림은 두 가지 교훈을 안겨준다. 동맹은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상호 신뢰와 적정한 역할 분담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동맹 표류는 상대방에 대한 의구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일본은 1996년 이후 일본민주당이 집권했던 한 시기를 제외하면 굳건한 미·일 동맹의 바탕 위에서 저성장과 안보 불안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도 신뢰에 기반한 한·미 공조를 상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동맹이 표류하게 되면 비핵화도 허상이 되고 한국의 안보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 있다. 비핵화에 성공한다 해도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면 한국의 국제적 입지는 좁아지고 대외 신인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핵화를 위해 한·미 동맹을 바꿔치기 하는 우는 절대로 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