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교수](아침을 열며) 한국당 공개오디션, 정치 혁신일까 (한국일보 201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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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한국당 공개오디션, 정치 혁신일까

‘혁신’은 올해 한국 사회의 중심 화두가 될 전망이다. 며칠 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밝힌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혁신을 동력으로 한 성장과 일자리 문제 해결이었다. 일견 경제적 측면만 강조된 것 같지만 사실 ‘포용’이라는 목표와 함께 사회 곳곳의 혁신이 이야기될 것 같다. 더구나 지난해에 이어 연달아 혁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가 올해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이렇게 혁신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심각한 정체의 문제가 놓여 있을 것 같다. 반도체 특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영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경제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계속되는 안전 불감증과 일탈, 집단 간 갈등과 같은 사회문제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개선의 의지를 불태우는 구호가 난무하고,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체감할만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치 영역의 혁신은 더 문제다. 상대적으로 저발전 수준에 있는 정치를 혁신해야 하는 강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의 정치개혁 논의는 실질적으로는 공직선거법 조항 몇 개를 개정하는데 그쳤다. 또 현 정부가 약속한 개헌은 이미 정치권의 의제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그나마 진행 중인 선거제도 개혁 논의 역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정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회의원 지역구 조직위원장 선출을 위해 자유한국당이 실험적으로 시도한 공개오디션은 표면적으로나마 혁신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정당 상층부의 은밀한 의결 조율에 따랐던 조직위원장 선출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며, 조직위원장 자리를 두고 벌어지던 당내 이전투구를 해소하려는 의지를 보인 사건이다. 한국 사회 내에서 수세에 몰린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한 조직적 변화를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러한 실험이 여전히 ‘보여 주기식’ 정치라는 구태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우선 이번에 선출해야 하는 79개 국회의원 지역구 조직위원장 가운데 공개오디션은 단 15개 지역에만 한정됐다. 정치 혁신이라고 선전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적은 수이고, 호남 지역은 빠져 있는 지역적 편향도 보인다.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적당한 지역구만을 물색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또한 공개성 강화에도 불구하고 의결 과정은 여전히 중앙집권적 방식을 탈피하지 못했다. 공개오디션을 거친 15개 지역을 제외한 64개 지역구 위원장은 과거처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들의 결정만으로 선출된다. 공개오디션을 시행한 15개 지역구에서 일반당원은 단지 40%의 의결권만 지닐 뿐이다.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지만, 당내 인사 충원 과정의 핵심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정당은 정치 혁신 보다는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한 선별적 호소 전략이 효과적임을 알고 있다. 정치 혁신은 큰 비용이 드는 반면 표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정치 혁신이라는 목표는 나만의 노력이 아니라 경쟁 정당 모두의 노력을 요구하며 그 달성 과정에서 무임 승차자의 문제가 발생하는 전형적인 집합 행동의 딜레마에 속한다. 그 결과 실질적인 혁신보다는 부분적인 인적, 조직적 쇄신을 통해 혁신을 지지한다는 이미지 전달이 오히려 매력적인 선택이 된다. 자유한국당의 공개오디션도 아직까지는 정치 혁신보다 이미지 쇄신 전략의 일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 ‘혁신’에 대한 사회적 강조가 이와 같은 정치권의 실험이 진정한 정치 혁신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