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중국 패권이 두려워지는 이유(경향신문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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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9

[정동칼럼]중국 패권이 두려워지는 이유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글로벌하게 부자가 되려면 이른바 글로벌 상품을 만들어서 팔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상품이란 설탕, 커피,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 세계 어디에서도 팔 수 있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평양냉면은 우리에게는 잘 팔리는 로컬 상품이지만, 우리의 국경을 넘어서면 구매자를 찾기가 어렵다. 한편 양복과 같은 옷들은 처음에는 서양인들이 입는 로컬 상품이었지만, 양복이 세계 표준이 되어가면서 글로벌 상품이 되었다. 로컬 상품이 글로벌 상품이 되고, 글로벌 상품이 로컬 상품이 되는 다양한 경로들이 존재하는데, 그와 관련된 복잡한 논의는 별도로 하고, 어쨌든 기본적으로 글로벌하게 팔리는 상품들은 그 상품 경쟁력을 장악한 사람이나 기업을 어마어마한 부자로 만들어준다. 한국의 냉면집이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부의 축적 면에서 경쟁이 안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근대 강대국의 역사를 보게 되면 경쟁력 있는 여러 글로벌 상품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부자국가가 되고, 강대국이 되었다. 면직과 옷, 그리고 관련 방적기계, 철도, 자동차, 철강, 반도체, 컴퓨터, 스마트폰, 글로벌 금융기관 등 이런 산업으로 강대국들이 성장하고 저물고 하였다. 그리고 예전에는 글로벌 상품 혹은 그 원료를 독점적으로 획득하기 위하여 식민지 개척 및 전쟁 등도 서슴지 않은 것이 근대 인간과 강대국의 역사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소위 빅데이터 생산, 처리 기술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글로벌 상품이 몇 개의 큰 시장을 중심으로 매우 분절적으로 로컬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글로벌과 로컬의 기준과 정의가 무엇인가의 논쟁이 있겠지만, 하나의 표준화된 제품이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팔릴 수 있을 때 글로벌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글로벌의 정도가 높은 상품의 종류는 앞으로 현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로컬의 수준이 매우 개인적인 차원으로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개인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이 본래 글로벌한 상품을 그 개인적 데이터에 부합하는 상품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인자동차를 팔 때, 그 자동차 안의 인공지능이 운전자의 언어, 운전습관, 생활패턴, 기호, 자주 다니는 길과 지형, 지인의 안면인식,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의 종류와 성격 등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매우 개인화된 자동차를 만들어서 팔 수 있게 된다. 물론 개인화되기 이전에 이미 국가별로 표준, 규제, 지형, 문화에 관한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국가 수준에서 로컬화되는 자동차로 판매되어야 할 것이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대한 데이터의 양과 그걸 처리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인간수준으로 진화, 학습된 인공지능의 기술인데, 현재 데이터의 양과, 국가의 데이터 인프라 통제(구글, 페이스북 등의 사용불가), 그리고 엄청난 투자와 인적자원 및 기술발전으로 인하여 이 분야에서는 중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으로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여기에 데이터 전송의 보호기술 역시 양자통신 등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가 산업의 기본 연료가 되는 미래의 경제에서 중국이 세계를 제패할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자국의 로컬 시장 규모를 중국 경제권으로 확대하여 중국 중심의 인터넷 플랫폼으로 장악하게 되면 데이터 산업과 인공지능 기술이 중국을 중심으로 축적되면서 선순환하게 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패권국가로 중국이 등장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중국에 미래 산업의 제품을 수출하고자 한다면, 매우 중국적인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에 수출을 하면 할수록 중국의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수출을 하는 우리보다 오히려 중국이 더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예상된다. 만약 중국이 일대일로를 거치는 국가를 중국의 데이터 인프라 안으로 묶어버린다면, 이러한 중국에 대한 의존은 중국의 시장이 개방되면 될수록 더욱 의존이 늘어나는 역설적인 종속의 수준으로 갈 수도 있다. 이러한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보고 준비해야 할까? 미국도 자신의 데이터 인프라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려 할 터인데, 그렇다면 미래에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서로 배타적인 거대 플랫폼이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양극체제가 될까? 그 국제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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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182027045&code=990308#csidx3e2b67c88ed90cb9a26d9d48d7ff7c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