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교수](시론) 2030 국회의원 왜 3명뿐인가 (조선일보 2018.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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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7

[시론] 2030 국회의원 왜 3명뿐인가

  •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 입력 2018.08.21 03:17

佛 대통령·캐나다 총리 등 30~40대가 세계 정치 最前線
老정치인들 활개치는 한국… 청년 정치인 양성 제도 全無
'청년 노동당·보수당'처럼 당내 청년 정치 활성화해야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올여름 정치권에 '올드보이' 논쟁이 불고 있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에 65세의 김병준 교수, 민주평화당 당대표에 66세의 정동영 의원이 선출됐고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의 당대표 경선에서 이해찬·김진표·손학규 등 60대 후반~70대 초반 노(老)정치인들이 일제히 선전(善戰)하면서다. "정치를 개혁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와 "물리적 나이보다 생각의 나이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사실 정치적 신념을 실천하는 데 나이가 장애 요인일 순 없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 총리직을 물러날 때 그의 나이는 만 80세가 넘었었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 역시 만 79세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지금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3세이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65세다. 물론 39세에 프랑스 대통령이 된 마크롱을 위시하여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 오스트리아의 쿠르츠 총리 등 30~40대 정치인들이 전 세계적 정치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그러니 언제 정치를 시작할지, 언제 끝낼지에 대한 정치인의 선택을 '나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올드보이' 논쟁을 그래서 한국 정치권에서 정치적 기회 구조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정치 개혁의 기회가 올 때마다 매번 올드보이들만 나서는 상황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에서다. '왜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충분한 식견을 지닌 젊은 정치인들을 양성하지 못하나' 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런 주장은 빈번히 제기됐지만 공론화되지 못했다. 이번에 더 관심을 끄는 것은 그러잖아도 일자리 문제 등으로 상실감이 큰 젊은 2030세대가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적 리더를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정치 과잉의 시대를 거치며 성장한 한국 정당이 이 문제에 귀를 기울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정당은 지금까지 젊은 정치인을 양성할 필요성이 약했다.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입신양명(立身揚名)형 정치인'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충원에 필요한 공급이 항상 수요를 채우고 넘쳐왔기에 젊은 정치 신인들이 체감할 진입 장벽에 대한 관심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 결과가 지금 같은 불균형 충원 구조다. 예를 들어 2016년 총선에서 당선된 20대 국회의 40세 미만 국회의원은 딱 3명(지역구는 1명)으로 총원의 1%에 불과하다. 20대와 30대를 합한 인구가 전체 인구(20세 이상 기준)의 34%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적다. 올 6월 실시된 지방선거도 별반 다르지 않다. 737명의 시·도 의회의원 선거 당선자 가운데 40세 미만은 단 33명이고, 2541명을 뽑은 구·시·군 의회의원 선거에선 155명에 그쳤다.

더 심각한 것은 정당 내부에 젊은 정치 신인을 키울 수 있는 표준화된 과정이 없다는 사실이다. 각 정당의 청년 조직 및 청년국은 부족한 재정 지원 등으로 조직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태다. 그렇다고 따로 청년들의 정치 교육을 위한 정규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정치적 낙하산이 난무한다. 외부에서 충원된 명망가가 당내 청년 조직 양성에 관심을 둘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젊은 정치 신인을 충원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구조'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는 25~26세 미만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청년 노동당(Young Labour)'이나 '청년 보수당(Young Conservatives)' 같은 상설 조직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있는 영국과 크게 대비된다. 마거릿 대처와 같은 보수당 리더가 이런 조직을 통해 동료 당원들과 정치적 경험을 쌓으며 20대 중반부터 리더십을 길렀던 기회가 한국에선 요원한 것이다.

이번 올드보이 논쟁도 과거처럼 소모적인 논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논쟁이 정치 개혁을 위해 나선 올드보이들에게 한국 정당의 정치인 충원 구조 문제를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선 희망적이다. 과거와 달리 올드보이들이 스스로 나서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돌아봤으면 한다.

특히 젊은 시절에 '정치적 신념'을 개발하고 단련하며, 정치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당내 청년 정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제도적인 방안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시적으로나마 정당에 대한 국고 지원금 일부를 각 정당이 정치 신인·후진을 양성하는 데 지출하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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