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존경도, 매력도 없는 자칭 보수세력 (경향신문 201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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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정동칼럼]존경도, 매력도 없는 자칭 보수세력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에 외세와의 전쟁이 발발했다고 가정해 보자. 전쟁이 나면 당연히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보내진다.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부상하고, 부모님들은 절망하며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자신의 죽음과 부상으로 누구와 무엇을 지켜준 것일까?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일까, 아니면 그렇게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이 땅에서 가장 많은 부와 권력을 소유한 상위 1~10%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일까? 사실 우리 모두가 같이 사는 대한민국이고 그 대한민국의 국민과 재산을 꼭 이렇게 구별할 필요는 없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전쟁의 승리로 얻는 가장 큰 혜택은 보통 젊은이들의 피와 상처와 절망으로 보호되는 상위 1% 혹은 10%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우리 어르신들의 생명과 재산이다. 

이 가정과 시나리오는 의도적으로 자극적 표현과 논리를 사용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세력(글쓰기의 편의상 그냥 보수라고 쓰겠다)의 위치와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보수세력은 이른바 ‘안보보수’와 ‘시장보수’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반공을 이념의 근간으로 하여 국가를 지키기 위해 상시 국가적 준전시상태에 준하는 준비를 해야 하고, 한·미동맹을 종교의 영역에 놓고, 국가 안보를 위하여 많은 것들(민주주의, 인권, 청춘, 생명까지도)을 희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로 노년층을 중심으로 안보보수세력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자연스러운 정서이지만 한국에서의 독특한 권력인 유교적 ‘연장자 권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주로 연장자로 구성된 안보보수세력은 젊은이들의 해이함과 방종과 건방짐이 나라를 망친다고 야단치고, 훈계한다. 물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그들의 공헌을 인정하지만 젊은이들은 일방적으로 야단맞고, 강요받는 이 상황과, 오직 나이만으로 권력이 주어지는 불공정성에 속이 끓는다. 이러한 일방적 연장자 권력이 우리의 안보보수 속에 녹아 있다. 젊은이들은 이들의 생명과 노후를 보장하는 국가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나이 권력 때문에 일방적으로 야단만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공과 ‘빨갱이 협박’으로 생명을 이어온 안보보수세력이 고연령층이고, 지극히 유교적인 지역을 대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보수의 또 다른 한 축인 시장보수세력은 안보보수와 넓은 교집합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장을 위해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경제성장’ 제일주의와 상위 1% 혹은 10%로의 부의 집중은 시장원리라고 강변하는 세력이다. 재벌과 부자 권력이 특권을 행사하고 갑질을 하고, 탈법과 불법을 저질러도, 그들의 국가 경제 공헌을 내세우며 이들에게는 유난히도 관대하고 오히려 탈법과 불법을 권장하는 모습마저 보이는 세력이 시장보수세력이다. 이들 중에는 전쟁이 나면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병역의 의무에서 유난히 자유로운 사람이 많고, 단지 출생이 좋다는 이유로 노동의 대가를 보통사람들의 수백배에 이르게 받고, 자신의 재산 규모에 만족하지 않고 총수라는 선출되지 않은 국가권력까지 물려받는다. 그리고 전쟁터와 시장에서 자신을 위해 싸워주는 사람들이 그들의 특권과 불법, 탈법을 지적하면 반공과 빨갱이 논리로 위협하고 공격한다. 시장보수와 안보보수가 겹치는 지점이다.

지금 우리의 보수 정당은 이들 연장자와 소수의 시장권력을 대한민국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주로 이들만을 대변해 왔다. 그런데 우리 보수가 건강하지 못한 것은 자신들을 지켜주어야 할 국민들에게 권력과 폭력만을 행사하지, 스스로 국가의 주류가 되기 위한 ‘존경심’을 얻지 못하고 ‘품격’과 ‘희생’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대부분이 자기 재산이고 특권인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나온 당연한 의무사항일 뿐 대단히 숭고한 의무사항이 아니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수준의 재산을 넘어서는 부분은 그때부터 재산이 아니라 권력이 된다. 서양 선진국의 주류는 그 재산을 존경을 얻기 위해 최소한의 자선과 공공성을 목적으로 사용하고 노력하지만, 우리의 보수세력은 그 재산을 떵떵거리기 위해서만 사용한다. 지난 두 번의 보수 정부가 외쳤던 자선과 공공성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보수세력은 대한민국의 주류임을 자처하며 자신들을 무조건 공경하라고 대다수의 국민을 협박하고 강요해 왔다. 같이 잘살아야만 자신들의 큰 혜택이 지켜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국민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강권력만 있고 매력이 없는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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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282058015&code=990308#csidx94e5ab39b412f4a8c982663e98c8a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