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 포럼) 北核 ‘디테일 5대 악마’가 관건이다 (문화일보 201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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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11일(金)
北核 ‘디테일 5대 악마’가 관건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미국과 북한 간 정상회담이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고 공개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정은의 ‘대담한 결단’을 평가하면서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희망에 조금은 들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방문한 워싱턴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놀랄 만큼 높았다. 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공유하면서도, 다가올 비핵화 과정에 대한 우려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우려는 산재한 악마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관한 것들이다.

첫째, 비핵화의 범위다. 미국은 최근 들어 핵무기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도 포함하길 원하며 인권 문제도 들먹이고 있다. 북한은 일단 선제적으로 핵실험의 중단, 핵무기의 불사용, 핵 프로그램의 이전 금지 등 ‘책임 있는 핵보유국’ 입장을 천명하면서 출발점에 섰다.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범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하면 비핵화의 초점을 흐릴 우려가 있고, 너무 좁게 하면 변명어린 탈출구를 만들어줄 수 있다. 비핵화의 핵심이 핵물질, 핵탄두, 핵 생산시설, 핵무기 운반 수단의 제거, 폐기 및 통제라는 데 대해 이의를 다는 이는 적다.

둘째, 비핵화의 수순도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선 핵 폐기,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 방식을 선호해 왔다. 최근에는 ‘절충형 남아공 모델’을 거론하고 있다. 자발적 핵 포기에 대해 즉각적인 보상은 없지만, 체제 보장에 대한 약속은 주는 방식이다. 그 반면,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는 북한은 동시 행동에 입각한 ‘단계적 비핵화’를 원한다. 중국도 이 방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분명한 점은 핵 포기에 대한 타협할 만한 보상이 이뤄져야만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 비핵화의 속도다. 미국은 북한이 가능한 한 1∼2년 안에 아주 빠른 비핵화를 완료하길 원한다. 북한도 기본적으로 조속한 비핵화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검증에 20년은 걸릴 것이란 회의론조차 있다. 하지만 비핵화의 속도가 느려지면 당사자는 물론 관계국의 의구심만 늘어갈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겹치는 2∼3년 이내에 비핵화 과정을 마무리 지어야만 실효성이 있다는 게 상식적인 추론이다.

넷째, 비핵화의 검증이야말로 관건이다. 검증 없는 비핵화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생산시설이 산재해 있고, 핵무기 보관 시설도 지하와 산중에 널려 있다. 핵무기 생산시설 및 실험시설을 공개적으로 파괴하는 것만으론 안심할 수 없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확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로의 복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공인된 사찰을 전면 수용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다섯째, 비핵화의 종착점이다. 비핵화는 기본적으로 북한을 국제적 정상국가로 받아들이고 개혁·개방을 추진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발판이다. 이를 위해서는 종전 선언에서 시작해 평화협정 및 미·북, 일·북 관계 정상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 증진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 신질서 수립에 관한 밑그림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미뿐만 아니라 중·일의 이해와 동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난제들을 잘 풀어가려면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용기 있는 결단, 정책결정자들의 명민한 지혜, 그리고 신중하고 엄격한 이행 과정의 실행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