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교수] 미투(Me Too) 운동과 한국의 정당 (한국일보 201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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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2

[아침을 열며] 미투(Me Too) 운동과 한국의 정당

최근 성폭력과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고 근절하기 위한 미투 운동이 초미의 관심사다. 미투 운동은 작년 10월 미국 뉴욕 타임즈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여배우를 포함한 다수의 여성들을 성추행해 온 거물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행태를 고발하면서 시작되었다.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투 운동은 미국 영화ㆍ예술계뿐만 아니라 정계 등 광범위한 분야로 확산되었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알라바마 주에서 민주당 후보가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내 미투 운동은 올 1월 한 여성 검사가 검찰조직 내에서 자신이 겪은 성추행 피해를 고발한 것이 계기였다. 미국과 유사하게 한국 내 미투 운동도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친숙하고 존경 받던 이들의 파렴치 행위는 국민에게 실망과 당혹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미투 운동은 미국과 비교할 때 사회ㆍ정치적으로 더욱 복잡한 배경에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회적으로 한국은 성폭력,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 수준이 높지 않다. 미국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한국은 성폭력 범죄 등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 등이 제정된 2010년을 전후한 시점에서야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성폭력의 판단 기준 및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동의 및 공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 예로 수 년 간 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성폭력 교육을 강화해 온 대학사회 내에서도 구성원 간 해당문제에 대한 인식의 온도 차는 크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약하다는 사실은 미투 운동에 대한 인식 역시 이해관계에 따라 상이할 것을 함의한다. 성별, 연령, 교육수준, 이념 등 다양한 사회갈등 요소에 따라 미투 운동에 대한 평가도 복잡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둘째, 정치적으로 사회문제를 공론화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정당의 역할이 미약하다는 문제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정당들은 미투 운동을 인권 및 시민권의 강화를 공론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페미니즘과 시민권은 자신들이 지지해온 의제였음을 주장할 뿐 아니라 당의 정책과 선거후보자 교육과정에 미투 운동의 주장을 반영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공화당은 상대적으로 미투 운동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분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 분쟁에 관한 법률안 개정과정에서 성폭력과 관련된 분쟁은 약자인 피고용자의 지위를 개선할 필요성에 동의하는 등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수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주요정당들은 미투 운동이 제기한 사회적 의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데 실패하는 것 같다. 한국 정당들은 미국 정당과 같이 미투 운동을 계기로 시민권, 성평등과 같은 근본적 사회 개혁 의제를 공론화하지 못하고, 미투 운동을 대정부 투쟁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거나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안 발의와 같이 사례 중심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 머물고 있다. 그나마 민주당은 젠더폭력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는 등 미투 운동이 제기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으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 개혁안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이 제기한 성폭력 문제는 남성 가해자와 여성 피해자 간의 문제, 권력자와 피억압자 간의 문제와 같이 단순한 대립관계로 수렴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별, 연령, 학력, 이념 등에 따라 미투 운동이 제기한 의제는 상이한 방식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인권과 시민권과 같은 보다 근본적 판단기준을 중심으로 조정해 갈 수 있는 한국 정당들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