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 출구로서의 위안부 (매일경제 201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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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2015년 위안부 합의의 본질은 과거사에 얽매여 있던 한일관계에 새로운 협력의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 합의 도출 이전에 박근혜 정권은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도 다른 분야의 협력도 없다는 원칙주의를 고집했다. 그 결과 과거사의 그림자에 묻혀 양국 간 실질적 협력은 뒷걸음질만 했다.

지금도 위안부 합의에 대한 찬반양론이 거세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권의 실패에서 하나의 교훈을 배웠다. 과거사를 모든 사안의 앞자리에 가져다두면 협력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는 "국민들이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따갑게 지적하면서도, "한일관계 전체가 이 문제로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 서 있다.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전면적 긍정론을 취하는 이는 드물다. 부분적 수용론도 소수파로 밀려나고 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각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시각도 편차가 있고, 정부 내에서도 외교부, 청와대, 여성가족부의 입장이 말끔하게 조율된 것 같지 않다.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세 가지 비판적 논의가 담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장 비판적 시각은 `위안부 재협상론`이다. 비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되었고 굴욕적인 협상 결과이니 걷어차고 재협상하자는 주장이다. 재협상 주장은 듣기엔 좋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게 문제다. 재협상 상대인 일본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만약 재협상에 응한다고 해도 현재 합의보다 더 나은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재협상의 수혜자여야 할 피해자가 37명밖에 남지 않은 데다 생존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재협상론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일방적 파기론`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합의이니 우리 측이 무효를 선언하고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싫건 좋건 간에 합의 당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받아들임으로써 약속을 파기하는 측이 외교적 부담을 껴안아야 하는 게 걸림돌이다. 상대국과의 외교적 합의를 국내 상황 변화를 이유로 파기하는 것은 국제외교 관례상 리스크가 크다. 무엇보다 `한국은 골 포스트를 옮기는 나라`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우익들에 정치적 비판거리를 몰아주는 꼴이 된다.

합의에 비판적이면서도 우리 측의 주권적 정책 선택이라 현실적 실행력이 담보되는 방안이 `비판적 재검증론`이다. 아베 신조 총리도 자신이 부정적이었던 고노담화를 재검증한 선례가 있다. 선택적 수용론 또는 총론 찬성, 각론 반대에 가깝다. 재검증이 이루어진다면 피해자 및 관계 기관과의 사전 협의 등 민주적 절차를 거쳤는지, 문구 작성의 주체가 누구인지, 이면 합의는 없었는지,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과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지 선별하는 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검증을 진행할 경우에도 몇 가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우선 위안부 합의 재검증과 다른 분야의 협력은 정경분리와 실용주의의 원칙하에 병렬적으로 동시 진행되어야 한다. 과거사 문제로 시간만 낭비했던 전 정권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론의 향배에만 구애받지 말고 전문가적인 식견과 정책 실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공개 재판식 검증을 피해야 하는 이유이다.

셋째. 비판과 동시에 수용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합의의 독소는 제거하되 긍정적 평가가 가능한 부분은 과감히 국민들에게 밝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과거사에 몰입되고 갇혀 있는 한일관계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넘어서서 열린 한일관계를 지향하는 디딤돌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