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시진핑의 무대가 된 ‘다보스극장’ (경향신문 201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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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다보스 포럼이라고도 알려진 ‘세계경제포럼’이 지난 1월17일부터 21일까지 약 일주일에 걸쳐 열렸다. 스위스의 다보스라는 산골 스키 리조트에서 열리는 이 포럼에 왜 세계가 주목하고 우리도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것일까? 세계경제포럼이 중요한 이유는 매년 이 포럼이 전 세계의 정계, 경제계, 학계, 언론계 지도자급 인사들을 모아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발신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린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바로 이 포럼에서 작년에 발신된 메시지이다. 지구상에 무수히 많은 포럼이 존재하지만 세계경제포럼만큼 대통령이나 총리급의 지도자, 세계 일류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그리고 각계 명사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포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초에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판단하고 측정하는 일종의 바로미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역으로 세계경제포럼이 이러한 중요한 힘을 갖게 된 비결은 아무 때나 쉽게 만날 수 없는 중요한 사람들을 일거에 한자리에 모아 놓고 단시간 내에 서로 만나고 협의하고 협상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남과 협상의 거래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엄청난 고가의 회비를 내면서도 매년 이 포럼에 참석한다. 포럼의 모델과 영향력이 서로 선순환하는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시론]시진핑의 무대가 된 ‘다보스 극장’

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 포럼에 부정기적으로 참석했는데, 우리 같은 교수가 참여하는 이유는 유력 인사들을 모아 놓는 김에 세상의 흐름에 대한 공부도 같이하자는 의미에서이다. 일종의 아이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교수에게는 따로 회비를 받지 않고 여비를 제공한다. 그리고 세계경제포럼은 실제로 큰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설정하여 세계의 아이디어 흐름을 주도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 설정이 바로 그 예이다. 우리나라는 생각의 패러다임이라는 면에서 이미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그 주제의 상자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이번 포럼에서도 그러한 메시지 발신의 시도가 있었는데, 이 메시지를 지배한 사람은 단연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었다. 시 주석은 이 포럼의 영향력과 메시지 발신 기능을 정말 제대로 이용한 ‘신의 한 수’를 보여주었다. ‘잘 듣는 리더십, 책임 있는 리더십’으로 대주제가 선정된 이번 포럼에서 시 주석은 전 세계 지도자와 언론을 향해 예측불허이고 막무가내로 자국 중심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를 책임 있게 끌고 가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미국이 회수하는 자유무역이나 세계경제체제의 안정과 같은 국제 공공재를 중국이 대신 제공하겠다는 선언이다. 미국의 책임 있는 리더십이 저물면서 중국이 그 자리를 파고 들어오는 장면이다. 물론 중국이 실제로 그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곧바로 나오고 있지만, 중국의 리더십은 자력보다는 트럼프의 막가파 리더십으로 인해 더욱 돋보이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세계경제질서에서 수억명을 빈곤에서 탈출시키고 자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으니 중국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경제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 2차 대전 전후 지금과 같은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를 새로 만드는 리더십은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강국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이미 만들어진 질서는 국제사회의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도 미국을 대신하여 그럭저럭 끌고 나갈 여지가 크다. 중국의 부상이 경제력뿐만 아니라 지도력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시대교체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

시진핑의 무대와는 별도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다수의 회의가 있었는데, 세계경제포럼이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한다는 의미다. 이 세계경제포럼은 부자들과 승자들을 대변하는 포럼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4차 산업혁명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힘이 없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변해야 하는지에 관한 회의도 제법 보였다.

이 포럼에 오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을 포함한 세계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지난 두 번의 정권과 함께 뒷걸음쳐 왔다는 사실이다. 작아지기만 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위상은 다보스에서 바로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나 메시지 발신에서 대한민국은 잘 안 보인다. 예전에는 민주주의 인터넷 강국이라는 위상이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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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303&artid=201701312102025#csidx001e5cf5a8ecdf0b61ad62495cf9a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