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글로벌포커스) 우물 속에 앉아서 美·中·日을 안다고 하는가 (조선일보 20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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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美·中·日·러에 둘러싸인 한국
주변국 모르고 대외환경 무시… 음모론·입맛에 맞는 사고 익숙
中을 북한 중심으로 이해하려하고, 日을 과거사 연장선에서만 보려해
국가번영 위해 냉철한 사고 길러야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사진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한국은 바깥세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중·일·러 등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와 먹거리를 해외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지경학적 여건 때문이다. 국제 문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이해와 역경을 헤쳐나갈 명민한 대외 전략이 어느 나라보다도 중요한 나라다. 그런데도 우리처럼 주변국을 제대로 모르고 대외 환경을 무시하는 나라도 없다.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한국만 모르고,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지 한국만 신경 안 쓰고, 일본은 대단한 나라인데 한국만 무시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인구에 회자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국제사회와 주변국을 이해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방식이 몸에 배어 있다는 점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뒤로하고 우리의 희망과 기대가 섞인 사고에 젖어드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상대국의 전략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해서 우리 입맛에만 맞을 뿐 현실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주변국을 이해하려 든다.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야무지지 못하다. 힘이 커진 중국은 한반도에서 북한과 더불어 한국을 우호국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동중국해에서 일본의 우위를 밀어내려 하고, 남중국해에서는 인공섬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세력권을 확장하려 한다. 지역 차원에서 보자면 분명히 공세적인데, 우리는 우호적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크다. 이는 북한과의 거리를 중심으로 중국을 이해하려는 습성 때문이다. 그러니 미·중 관계의 틀에서 사드를 읽는 중국의 반발에 당황해한다. 중국은 북한보다 한국 편이라는 기대에 찬 전망을 하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중국 대외 인식의 저변에 있고, 완충 국가인 북한을 쉽사리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는 기대의 뒤편에 선다.

일본을 보는 우리의 눈은 단선적이다. 일본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과거사의 연장선상에서만 바라보는 방식에 익숙하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가해자이니까 한국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간주한다. 한국과 일본이 현재와 미래에 무엇을 함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아예 뒷전이다. 일본 없이는 한국의 안보 시스템과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한국의 인구학적 생태나 경제사회생활이 2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애써 외면한다. 일본이 한국의 협력자이자 반면교사임을 이해하는 데는 훈련이 필요하다.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편향적이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땐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했다. 미국 쇠고기 먹고 건강을 해쳤다는 이를 아직 보지 못했다. 과학적인 근거가 미약한데도 사드 배치에 따라오는 레이더 때문에 농작물이 손상된다는 논리가 괴담처럼 나돈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은 당연시하면서 동맹을 강화하는 움직임엔 반대가 앞선다. 반미에는 목청을 높이는 시민단체가 중국의 압력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지 북한의 핵개발과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왜 시위를 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국제사회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강대국의 속성을 깨알같이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의 운명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질 수 있다. 미국이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도, 일본은 우리가 생채기를 내도 우호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가정도, 중국이 언젠가는 북한을 버리고 우리 손을 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재점검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우리 뜻대로 돌아가 주지 않는다.

국내 이슈에만 사로잡혀 서로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기에는 한국이 처한 대외 현실이 너무 험하고 각박하다. 미·중과 중·일이 갈등하고 있는 세력 변환기에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짜야 하는지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냉철하게 되짚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06/20160906034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