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글로벌포커스) 사드 논란, 머리와 꼬리가 바뀌었다 (조선일보 2016.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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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사드 논란을 보며 '헤이와 보케(平和ぼけ)'라는 일본 말이 떠올랐다. 평화에 젖어서 안보 감각이 흐트러지는 것을 말한다. 나라를 뒤흔드는 사드 논란을 보며 아쉬운 점, 배운 점, 고칠 점을 짚어본다.

사드 논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 논쟁의 시발점이 무엇보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라는 사실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북핵과 미사일의 위협이 없었다면 사드 배치는 불필요하고 북핵이 사라지면 사드는 철수하면 된다. 북한이 사드 배치를 놓고 '매국적 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은 말 그대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방어 체계다. 이를 미·중 간 전략적 경쟁 속에서 미국의 압력이나 대중국 외교전의 일환으로 보는 것은 꼬리를 머리와 바꾼 것이다.

사드 논란 속에서 국민의 안전과 안보가 뒤로 밀려난 느낌을 주는 것은 아쉽기 그지없다. 북한의 고고도 미사일에 대한 방어라면서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은 패트리엇 PAC-3로 방어하겠다는 것은 뭔가 꺼림칙하다. 차라리 한국의 안보에 중차대한 주한 미군의 시설과 장비, 인원을 보호하기 위해 방공포대를 들여오는 것이라는 설명이 더 알기 쉽지 않았을까. 그래서 운용 비용도 미국이 내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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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논란, 후진적 민낯 드러내…
'필요하다'면서 '내 지역은 안돼'
일만 터지면 시위 의존하는 양상도
이익 대표 체계의 허점 보여줘

국회·언론·주민 설득해 나가는
민주적 과정 회복이 해결의 열쇠

한국 안보에 직결된 것이라면 왜 처음부터 당당하게 우리의 핵심적 안보 이익이라고 주장하지 못했는지도 아쉽다. 중국은 사드와 레이더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편입되는 것이라면서 중국의 안보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한다는 우리의 안보 이익은 중국의 안보 이익에 비해 부차적이라는 말인가? 중국이 자국의 핵심적 전략 이익을 존중받으려면 우리의 안보 이익도 충분히 존중해야 마땅하다.

사드 논쟁을 통해 배운 것도 많다. 사드가 무엇인지 삼척동자도 알게 됐다. 우선 사드가 기술적으로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입증됐다. 인체 유해성을 반대의 중심에 두는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장에 경도된 것이다. 사드가 배치된 지역의 미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조용한데 한국 사람만 특별 검증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시민사회나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한국 특유의 정치 역학도 드러난다.

북한은 한국에 대해 저·중·고고도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수 있고, 고고도 미사일에는 사드를 통해 좀 더 촘촘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다만, 레이더로 북한 미사일을 포착하더라도 200㎞ 이내에서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전역을 커버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에서 미국을 향해 쏘는 대륙 간 탄도탄은 너무 높고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니 직접적 표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우려는 지나친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드 논란은 우리에게 넘어서야 할 산이 많다는 것도 일깨워 주었다. 우선 사드 논란은 한국 정치의 후진적 민낯을 드러냈다. 사드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면서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내 지역은 안 된다'는 지역 이기주의를 내세웠다. 성주 군민들은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소식에 시위로 대응했다. 정부의 결정 체제가 투명하지 못하고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시위에 의존하는 양상은 한국 정치권의 이익 대표 체계에 허점이 많다는 증거다.

정부의 비밀주의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사드와 관련하여 미국과의 협의가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배치 결정을 내렸고, 주민에게 알리지 않고 배치 지역을 발표했다. 전형적인 소통과 설득의 실패다. 사드의 본질을 차근차근 국민에게 알리고 인내심을 갖고 국회, 언론, 주민들을 설득해 나가는 민주적 과정의 회복이 사드 논란을 헤쳐 가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