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글로벌포커스) 한·일 안보 협력은 사치품이 아니다 (조선일보 201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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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유사시 한국 안보 지키려면 일본과 협력 불가피
한·일 정보 교환 레벨 높이면 북한과 대치한 한국에 유리
안보는 공기와 같아서 없어진 후에 후회하면 늦어

한국이 북한 문제를 관리하고 비핵화를 통한 평화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안다. 그런데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침탈을 경험한 한국이 일본과 안보 협력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은 의외로 강하다.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는 일본과 손을 잡는 게 매우 껄끄럽다.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통해 사실상 해석 개헌을 단행한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마저 통용된다. 나아가 한·일 안보 협력이 이루어지면 한·미·일 삼각 공조 체제 강화를 통해 대중국 봉쇄 전략에 일방적으로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의 안보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냉전기 한국의 안보를 담보해 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공산권에 대항하는 한·미·일 안보 협력이었다. 냉전이 끝나고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의 친구가 됐지만, '북한은 한국의 안보 위협'이라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불안정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이 경제성장을 통해 자주 국방 능력을 높여왔고, 통상 전력 면에서는 우위에 선 측면도 있는 만큼 한·미 동맹만 굳건하다면 북한의 안보 위협에 거뜬히 대처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평상시가 아닌 유사시 한국의 안보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우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일이 북한이라는 안보 위협에 함께 대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일이 협력하지 않으면 삼각형 한 변은 미완성 점선으로 남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미국의 지원은 필수 불가결하며,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뿐 아니라 주일미군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 일본에 유엔사령부 기지가 7개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해·공군 및 해병대가 주축인 주일미군과 육군이 주축인 주한미군은 같은 전역에서 함께 움직여야 하는 단위다. 또한 일본 자위대의 후방 지원과 물품 및 탄약 등 상호 군수 지원은 작전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한·일 양국이 군사 정보 보호 협정(GSOMIA)과 상호 군수 지원 협정(ACSA)을 통해 제도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군사 정보 보호 협정에 대한 일반의 오해가 먼저 불식되어야 한다. 한·일이 주고받을 군사 정보는 대부분 북한 관련 정보이고, 일본은 북한에 대한 중요한 정보 자산을 가지고 있다. 북한에 관한 것이라면 정보를 하나라도 더 가지는 게 한국에 유리하다. 한국은 이미 24개국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을 맺었고, 과거 적성국이었던 러시아와도 정보 교환을 하고 있다. 또한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을 맺었다고 해서 우리가 아는 정보를 다 내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지 정보 교환의 의무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한·일 간 정보 교환의 레벨을 높이는 것은 북한과 대치한 한국에 유리하다.

동북아의 어느 국가도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안보의 기본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말했듯 안보는 공기와 같아서 없어진 후에 후회해본들 너무 늦다. 한·일 안보 협력을 하자는 것이 중국과의 협력을 약화시키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유사시가 아닌 평상시 북한 문제를 관리하고 평화 통일로 유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나라는 중국이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나라도 중국이다.

중국과 최대한 협력해 북한과 신뢰할 수 있는 평화를 유도하되, 만약 이것이 실패해 국가 안보를 담보해야 한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안보 협력도 강화해야 하는 것이 북한과 마주한 한국의 숙명이다. 중국과 일본 어느 한 쪽만을 선택하는 외교·안보 전략은 위험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