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북핵의 국제정치학 개론 (경향신문 201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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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핵무기의 국제정치학은 매우 정교하게 이론이 발달되어 있는 분야이고 그 이론의 설명력과 예측력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뛰어나다. 그 이유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들이 그 이론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면서 핵무기와 핵정책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인지한 미국이 공멸을 막기 위해 이 이론을 개발하여 공유하였고, 그 이후 핵을 개발한 국가들은 모두 이 이론의 틀 안에서 사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보수정부는 북한을 단순히 ‘악’으로 규정하여 악을 응징하는 수준의 분석과 조치만을 반복하고 있다.

악을 응징하면 관람객들이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이 이론의 예측에 따르면 북한은 핵에 더 매달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면의 제약이 있지만 국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핵심정리의 형태로 핵무기의 국제정치학을 소개한다.

첫째, 핵무기를 갖는 이유는 상대방의 핵공격이나 무력 공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억지력 때문이고, 억지력은 2차 보복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이 있을 때 생겨난다. 핵은 무력 공격의 의심이 있는 적국에 대량 보복의 협박을 하여 공격 저지를 목표로 한다. 이 협박은 2차 보복능력이 없으면 유효하지 않은데, 예를 들어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내가 완전히 궤멸된다면 억지력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상대방의 공격이 있은 후에도 엄청난 보복능력이 있다면, 공격 후 보복이 두려워 상대방은 처음부터 공격하지 못한다. 이 보복능력을 2차 보복능력이라고 한다. 북한과 같이 경제력이 빈약한 국가가 미국 혹은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보다 효과적인 2차 보복능력 수단이 없다.

둘째, 2차 보복능력은 핵이 엄청난 인명살상을 할 수 있는 위력이 있어야 하고, 그걸 미사일이나 비행기와 같은 운반수단에 실어서 적국의 원하는 지점에 투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운반수단을 적의 선제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어야 확보된다. 즉 상대방의 선제공격에서 살아남는 핵무기가 있어야 하고, 그 핵무기가 가공할 능력으로 2차 보복을 해야 한다. 북한의 지난 4차례 핵실험과 수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타격 능력 면에서 북한의 능력이 향상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핵탄두의 파괴력이 증강되고, 이제는 장거리 미사일로 미국 본토까지 핵공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편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미사일(SLBM)과 이동식 미사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핵 운반수단의 보호와 관련이 있다. 고정된 미사일은 미국의 선제공격 대상이 된다. 하지만 유사시 이동시키고, 잠수함에 실어 놓으면 선제공격에서 살아남는 2차 보복능력을 갖게 된다.

현재 북한의 잠수함은 핵잠수함이 아니어서 미국 근해에까지 접근할 능력이 없지만 만약 북한이 핵잠수함을 갖게 된다면, 장거리 미사일과 더불어 미국 본토를 더 용이하게 공격할 수 있는 보복능력까지 갖게 된다. 북한의 핵개발 일지를 보면 이 전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셋째, 미사일 방어 기술은 이러한 억지력을 상쇄한다. 2차 보복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다 잡을 수 있다면, 선제 핵공격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보유 국가들은 이러한 방어기술에 대해서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며, 만일 누가 실전배치를 강행한다면 그 방어기술을 뚫기 위한 전력을 증강시키게 된다. 가장 간단한 것은 미사일의 숫자를 늘리는 것인데, 수많은 미사일 중 하나만 방어기술을 뚫어도 억지력이 확보된다. 즉 군비경쟁을 촉발한다.

이상은 매우 간단한 핵무기 국제정치학 개론이다. 이 이론에서 볼 때, 과연 북한에 대한 제재나 개성공단 폐쇄조치가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을까? 미사일 방어기술 도입이 과연 효과적일까? 억지력이 없어지는데,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가 가만있을까? 위협과 압박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억지력을 더 강화하는 것이 핵무기 국제정치학 이론의 예측이다. 방어기술을 도입하면 군비경쟁이 심화되고 지역안보가 더 불안해진다는 것이 같은 이론의 예측이다. 

이 이론에서 보면 지금 가장 중요한 안보조치는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0년대 6자회담과 같이 대화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북한의 미사일과 핵을 동결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정말 근본적인 해법은 북한과 국제사회 간의 적대관계 해소에 있다. 지금과 같은 조치들로는 남북한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안보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이론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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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308&artid=201602112138285#csidx321ec61386a798c89931acbb0f39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