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이슈토론) 한일 정상회담 해야하나 (매일경제 2013.10.17)


Publications by Faculties
2013-10-17

[이슈토론] 한일 정상회담 해야하나        

◆ 찬성 /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동북아 정세 긴박한 상황…외교 통해 챙길것 챙겨야

 현재 한국의 대일 정책을 잘 표현하는 개념은 `전략적 인내`이다.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일탈상태가 정상으로 복귀되고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표현될 때에만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보는 점에서 그렇다. 아베 총리도 박근혜 대통령도 일방적인 양보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ㆍ일 관계의 교착 상태는 생각보다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

사태가 쉽게 가라앉을 가능성이 작은 것은 지도자는 물론 양국 국민들이 서로 자기들은 잘못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깔보고 무시하면서 중국에는 잘 보이려고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잘못된 역사관을 고수하면서 군사대국화를 밀고 나가고 있다고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한ㆍ일 관계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건 미국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무리수를 쓰고 있다고 보지만, 헤이글 국방장관이 2+2 대화 후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무명용사의 묘역인 지도리가후치 묘지에 간 사실은 신경조차 안 쓴다. 미국이 과거사에선 일본의 편이 아님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에서 적극적 방위 분담을 하겠다는 일본이 미울 리가 없다. 과거사만 고집한다면 화살이 한국에 날아오는 것은 시간 문제다.

 중국은 이래저래 꽃놀이패다. 역사와 영토 문제만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면 한국이 대리전을 해주고, 일본이 싫다 보니 미국마저 갸우뚱하는 친중국 언동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미ㆍ일로부터 거리를 두는 한국이 맘에 들겠지만, 한국이 미ㆍ일의 신뢰를 잃고 할 수 있는 일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

동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넣은 균형 외교를 펼칠 때다. 면죄부를 주기 위한 정상회담은 피해야 하지만 할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한ㆍ일 정상은 만나는 게 좋다. 일본을 빼고 나면 동아시아 평화협력 구상도 물거품에 그친다. 때로는 유연함이 강직함보다도 강할 수 있다. 원칙은 지키되, 만남 지체를 미루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일본의 역사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만남을 은근히 재촉할 때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미ㆍ일이 합작해서 한국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등 떠밀려 회담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 반대 /송주명 한신대 글로벌협력대학 교수

과거회귀 몸부림 치는 日, 먼저 손내밀 필요는 없어

한ㆍ일 관계는 `구조적 마찰`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 정치가 우익ㆍ국가주의 지형으로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일본의 행태를 둘러싸고 갈등이 빗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의 개선을 서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현재 우리 정부도 관계 개선의 돌파구나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국회에서 조기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일본 지도층의 우익적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고수했다.

물론 정상회담을 통한 `조기 관계 개선론`도 만만치 않다. 이 입장은 암묵적으로 `동맹`의 관점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한ㆍ일이 동맹이어야 하는 법적, 정치적 근거는 없다. 국민도 진실을 잘 알고 있다. 국회 김재윤 의원실에 의하면 여론의 72.5%가 한ㆍ일이 동맹이 아니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지역 안정을 위해서 무작정 한ㆍ일 관계 개선을 미룰 일도 아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변수는 일본 정치의 구조적 변화다. 자민당 헌법개정안을 보면 아베 정권은 대내적으로 `애국심`을 강제하고, 국가에 의한 국민통제, 천황제의 복구를 기도하고 있다. 국가주의의 이념적 정당화를 위해 체계적으로 과거사를 은폐, 정당화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미ㆍ일 동맹을 명분으로 전 세계 어디서나 공격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집단자위권을 추구한다. 이를 혹자는 내정 문제며 `보통국가`로의 정상화라고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인접 강대국이 본격적인 재무장을 통해 공격적인 군사대국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이 나라는 국가주의 전략을 취하고 소통하기 어려운 자기중심적 군사대국이다. 결국 일본의 국가주의 전략은 한국에 큰 위험이 된다. 그리고 역사 문제나 야스쿠니신사의 정당화도 이미 일본 국가주의 전략의 핵심이다. 따라서 아베 정권이 `진정성`을 보여줄 여지도 그다지 넓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정부에 일본의 국가주의 전략에 대응할 체계적 방책이 있는지 하는 것이다.
체계적 방책은 결여한 채 표면적 관계 개선에만 몰두하면 허구적 동맹 인식에 따라 일본의 국가주의에 자발적으로 `연루`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상회담을 서두르기보다 일본의 국가주의에 대한 우리의 종합 외교전략을 서둘러 구축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새로운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