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경제민주화 후퇴와 박근혜 정부미래 (경향신문 20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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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정동칼럼]경제민주화 후퇴와 박근혜 정부미래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시도에 대해 반기지 않는 것 같다. 필자의 경우 주로 학계와 정책 서클의 경험, 그리고 언론 기고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러한 사람들의 현재 지향성을 느낀다.학회나 정책토론회에서 사람들의 머리를 가장 많이 끄덕거리게 하는 발표나 발언들은 현재의 상식과 상황을 잘 정리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재의 상식과 상황의 정리를 ‘현실적인 분석’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현재의 상식으로 볼 때 크게 무리 없는 대안들을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받아들인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과 다른 분석 및 대안을 제시하면 ‘순진하거나’ ‘몽상가적’ 발상을 하는 사람이 된다. 결국 전문가의 분석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상식적 차원의 것들에 약간의 논리와 많은 사실을 나열해서 포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들은, 특히 전문가들은 타인의 인정에 목을 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인의 공감이 형성되는 현실적인 분석에 중독되기 십상이다. 학술지에 기고된 글을 심사하는 과정을 보면 역시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 심사자들의 경우 무난한 글에 대해서는 무난하게 평가를 하게 되지만 창의적인 글에 대해서는 “그래 네가 얼마나 새로운 얘기를 하나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까다로운 잣대를 준비하고, 그러다보면 웬만큼 대작이 아닌 경우에는 창의적인 글의 탈락 가능성이 무난한 글보다 훨씬 높아진다. 물론 창의적이라는 이름으로 황당한 글을 쓰는 사람도 적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이고 현재 지향적인 것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하지만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이다. 항상 하던 것을 되풀이하고, 문제가 발생해도 증명된 해법만을 고수하면 사회의 발전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불행하게도 역사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실적인 분석’과 ‘현실적인 대안’만을 고집했다면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세계에서는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 현실화되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은 예전에 다 ‘공상’의 영역에 속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내세운 선거 공약들은 사실상 그렇게 보수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필자가 마음에 들어 했던 내용들은 ‘신뢰외교’ ‘창조경제’ ‘경제민주화’와 같은 공약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들은 현재 지향적인 현실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신뢰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공상과학적인 일을 하기보다는 그냥 국익과 힘을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외교를 그대로 하라는 비판이 앞서게 된다. 북한과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다. 창조경제의 경우에도 어떻게 창조적인 발상과 창조적인 시스템을 구현해 혁신하고, 신흥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런 게 되겠느냐고 회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현재 하고 있는 거라도 잘하라는 충고가 매우 ‘현실적인 충고’다.

신뢰외교 및 창조경제라는 공약과 달리 경제민주화라는 공약은 많은 사람이 원하는 공약이었지만 수많은 전문가들이 ‘포퓰리스트’ 공약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즉 ‘현실을 무시하는’ 공약이라는 것이다. 기왕에 잘해오던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그래서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는 상식을 무시하는 공약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현실적 분석’과 저항에 밀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정책이 눈에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신뢰외교나 창조경제도 비슷한 운명을 걷게 될지 모른다. 새로운 시도가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라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쉬운 것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쉬운 것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지도층과 전문가는 새롭게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진정한 성공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