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인터뷰) 新한국책략… 동북아 냉전시대, 21세기 한국의 선택을 말하다 2 (조선일보 20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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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국제] 

美 불편, 北 못믿겠고, 日은 싫고, 中 두려워하는… 한국 전략 위기

이하원 기자 이메일May2@chosun.com

[新한국책략… 동북아 냉전시대, 21세기 한국의 선택을 말하다] [2]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이젠 '시간의 축'서 벗어나 '공간의 축'에서 보자]
미국과 동맹 강화하는 協美, 일본과 연대하는 連日
중국과 결합력 높이는 結中, 북한과 소통하는 通北
'교량 국가' 한국에 필요한 대외전략

[일본엔 이슈별로 나눠 대응해야]
위안부 문제, 사과와 책임 배상 끝까지 요구하고
독도, 세계엔 알리면서 일본엔 단호한 무시 정책을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을 가볍게 봐선 안돼

"동아시아의 문제를 '시간의 축(軸)'에서 '공간의 축'으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 문제에서 현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인 상황 변화를 잘 읽어가며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국제대학원 교수)은 31일 한·중·일 동북아 3국의 갈등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한국이 동아시아 충돌의 맨 앞에 서는 '전선(前線) 국가'가 아니라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교량(橋梁)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소장은 "일본과 중국은 서로 경쟁의식이 강해서 충분한 신뢰감을 쌓지 못한다"며 "동북아에서 가장 개방된 한국이 일본과 중국과 소통하면서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일 및 중일 간의 갈등은 우발적이라기보다는 내재됐던 것이 아닌가.

"그런 측면이 크다. 미국의 쇠퇴, 중국의 부상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연장선상에서 영토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일본의 대응을 공세(攻勢)적으로 해석하는데, 나는 일본의 대응이 수세(守勢)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수세적 대응을 한다는 분석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독도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일본의 러시아·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봐야 한다. 옐친 시대에 쿠릴 열도 중 두 개의 섬을 반환하겠다고 했던 러시아가 부활하면서 영토 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서 공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약한 고리'인 한국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주변 국가 중에서 가장 약하기 때문에 강경대응한다는 것인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도 약한 고리다. 일본은 독도 문제에서 밀어붙여도 잃을 것이 없다. 이는 독도를 뺏으려고 하기보다는 일본의 자존심도 지키면서 민족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시(いやし) 내셔널리즘(마음을 달래는 민족주의)'인 것이다."

―일본이 일제(日帝)의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아닌가.

"미국의 제니퍼 린드(Lind)라는 여성학자가 '미안한 나라들'로 번역될 수 있는 'Sorry States'라는 책을 썼다. '국제정치에서의 사과'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이 책은 잘못을 범한 국가가 사과하면서도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이중적인 메시지를 내는 것을 파헤쳤다. 이 책의 메시지대로 일본은 사과보다도 역사의 진실을 안 보려고 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문제다. 최상룡 전 주일 대사는 '일본은 철저하게 반성하고, 철저하게 자유로워져라'고 했는데, 일본은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독도 문제와 일본군위안부(성노예) 문제에 대해 복합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군대 위안부 문제와 영토 문제는 구분돼야 한다. 각 이슈별로 나눠서 대응을 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마땅한 전쟁범죄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자신만만하게 나가도 상관없다. 사과와 책임,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독도 문제는 다르다. 국제사회에 우리의 독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야 하지만, 일본의 잘못된 주장에 대해선 '단호한 무시' 정책이 가장 좋다."

―한일 간의 이번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단기간에는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 현재는 양국 정상(頂上) 간의 관계가 파열된 상태다. 예전에는 양국 정상 간의 관계가 좋지 않아도 외교관들 간에는 서로 대화하고 했는데, 지금은 외교관들끼리도 서로 불신하는 단계다. 더 깊이 들어가면 옛날에 소방수 역할을 하던 양국 정치인들이 사라졌다. 지금은 양국 간의 감정을 더 이상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나.

"일본의 정치 일정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이달 21일 민주당 대표 선거, 26일에 자민당 총재선거가 있다. 예상하기로는 10월 말쯤 의회를 해산하고, 11월 총선을 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까지는 불씨가 살아 있을 것이다."

―일본 의회에서 우리나라를 비난하는 결의안이 나오고, 가장 발행 부수가 많은 신문조차 군대위안부 존재를 부인하고 나섰다.

"일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 중국은 물론 심지어 미국도 상관없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밖으로는 크게 들린다. 그런데 이들은 일본 전체 국민의 약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영토 문제가 던져지면 '울고 싶은 데 뺨 때리는 격'이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이들에게 올라타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에서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과대평가하는데, 일본 국민의 대다수는 한일 간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다."

―일본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는.

"일본의 집권 민주당은 세 가지 함정에 빠졌다. 일본은 미국, 한국과 가깝게 지내면서 중국에 대응하는 것을 기본 입장으로 삼아왔는데 이게 역사·영토 문제로 무너졌다. 민주당의 잘못으로 중국과 한국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둘째, 일본의 독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수록 센카쿠 열도에 대한 입장은 약해진다. 일본이 독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고, 중국이 그대로 센카쿠 문제에 적용할 것이다. 셋째, 군대 위안부에 대한 '고노(河野) 담화를 부정하겠다, 수정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부정이다. 이를 부정하면 국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최근 한일 갈등의 배경에는 한국의 일본 경시(輕視) 현상도 자리 잡고 있나.

"일본을 무시하고 중국에 크게 쏠리는 현상이 한국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90년대 초반부터 경제 불황을 겪었지만, 그 20년 동안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지위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도 경제 3위의 대국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경제 10위권 나라가 된 이후 일본의 경쟁력을 무시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을 이렇게 경시해서는 제대로 된 대응책이 나올 수 없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나갈 길은.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무시하거나, 중국과만 손잡고 일본을 경시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양쪽 손을 잡고 한국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한·미·일(韓·美·日) 협력을 최후의 보루로 가지면서 전면에서는 한·중·일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구사해야 하나.

"구한말에 '조선책략'을 쓴 황준헌은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를 강조했다. 지금은 미국과 동맹 강화하는 협미(協美), 일본과 연대(連帶)하는 연일(連日), 중국과 결합력을 높이는 결중(結中), 북한과 소통하는 통북(通北)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대외전략을 평가한다면.

"대외전략이 흔들리는 그런 느낌이다. 현재의 상황은 미국은 불편해 하고, 북한은 못 믿겠고, 일본은 싫고, 중국은 두려워하는 그런 상황이다. 한국은 혼자 살 수 있는, 자주자강(自主自强)할 수 있는 그런 나라는 아니다. 지금 일본과 싸우는 것을 보면 어린애 싸움하는 것 같다. 과연 전략이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정치권이 국내정치에 매몰돼 외교안보에 대해 무심하다는 평가가 있다.

"중국과의 심각한 갈등, 일본과의 정면 충돌은 한국에게 외교안보 전략이 사치품이 아니고 필수품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우리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수출지향적인 구조가 돼 있기에 외교안보 전략이 확고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가 흔들린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런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스럽다."

박철희 일본연구소장은

일본 현대정치와 한일 관계, 미·일관계에 대한 연구로 주목받는 1963년생 소장파 학자.

미국의 컬럼비아대에서 일본 정치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일본 연구 및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공로로 제1회 나카소네 야스히로상을 받았다.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에 이어 2004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과 관련된 국제학술회의에 한국의 대표로 자주 참가하고 있다.

‘일본의 국회의원이 만들어지는 법’ ‘자민당 정권과 전후체제의 변용’을 출간했다. 역서로 ‘일본의 미들파워 외교’‘흔들리는 일본의 정당정치’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