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 교수](경제시평-김종섭) 세계시장 뛰는 동아시아팀 (국민일보 20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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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1

[경제시평-김종섭] 세계시장 뛰는 동아시아팀  2012.07.31  18:35

세계 경제라는 무대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는 주체는 기업일까, 국가일까, 아니면 국가 그룹, 즉 지역일까? 이것은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주체가 기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나 폭스바겐, GM 등과 경쟁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더 좋은 차종을 내놓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경쟁자를 누르고 세계 시장 점유율을 늘려 나가려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경쟁 주체는 자동차 회사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의 경쟁력이 그 회사가 속한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 노동자의 숙련도, 수많은 부품 회사, 관련 인프라, 사업 환경 등의 결과물이라고 본다면 각국의 자동차 회사는 국가를 대표해서 경쟁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경쟁하는 주체는 국가경제라고 보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주체가 국가라고 보았을 때 국가경쟁력이 상승했다거나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여러 공정이 복수의 나라에 걸쳐 있다.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엔진을 비롯한 수많은 부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부품들이 한 국가에서만 생산되지는 않는다. 자동차 디자인, 조립, 기술개발 등의 공정도 여러 나라에 분산되어 있다. 따라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한 국가가 단독으로 경쟁하고 있다고 보기보다 여러 국가가 팀을 만들어 경쟁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생산에 있어서 가치사슬이 국제적으로 확대되어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생겨나기도 했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는 세계에서 크게 세 개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유럽 지역, 북미 지역,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이다. 즉, 세계 시장에는 여러 개의 국가로 만들어진 세 개의 팀, 즉 유럽팀, 북미팀, 동아시아팀이 경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팀이 가장 강할까? 종목마다 다르다. 종목마다 게임의 룰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팀워크가 중요한 종목이 있고 개인기가 중요한 종목이 있다. 예를 들어 IT산업에서는 팀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축구 같은 게임이다. 공격수도 필요하고 수비수도 필요하고 골키퍼도 필요하다. 연구·개발도 필요하고 장비 생산도 필요하고 부품생산, 조립 등도 필요하다.

골키퍼가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을 개발해 수비수에게 공을 패스하면 수비수는 부품을 만들어 미드필더에게 패스를 한다. 미드필더는 수비수로부터 넘겨받은 부품에 새로운 공정을 가해 드리블하다 공격수에게 넘겨주며 공격수는 여러 미드필더에게서 받은 많은 부품을 조립, 최종재를 생산해 소비시장에 슛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게임의 방식에서 동아시아팀은 매우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까지 서로 역할이 다른 다양한 선수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팀은 선수층이 얇고 역할이 비슷하다. 게임을 잘 하기가 힘들다. 유럽팀은 선수들이 많은데 역할이 매우 비슷하다. 골키퍼와 공격수밖에 없는 셈이다. 게다가 지금은 재정위기로 팀워크도 잘 안 맞게 되었다.

여기서의 게임은 팀원을 쉽게 바꿀 수 없다. 동아시아팀에 남미 선수를 스카우트하기는 힘들다. 팀원은 거의 지정학적으로 결정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적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지만 다른 지역 팀의 선수로 뛸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많은 선수들을 확보한 동아시아팀에 속해 있다. 선수들마다 개인기도 출중하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팀워크다. 전략을 잘 짜기만 한다면 한국이 동아시아팀에서 주장 역할을 하며 팀워크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섭(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