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 교수](경제시평-김종섭) 재앙을 전화위복으로 (국민일보 201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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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경제시평-김종섭] 재앙을 전화위복으로 2012.07.03 18:29

로또 당첨자들은 당첨금으로 짧은 기간 동안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모든 돈을 탕진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승승장구하던 투자회사가 망하는 이유는 모험을 좋아하는 투자의 귀재를 직원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난치병을 갖고 있지만 병을 잘 관리해 오히려 장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어떤 운동선수는 어린 시절 몸이 허약해 열심히 운동을 했더니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새옹지마나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게 하는 사례들이다. 이와 비슷하게 경제에서도 단기적인 재앙이 장기적으로는 축복이 되는 경우도 많고 단기적인 축복이 장기적인 재앙이 되는 경우도 많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1930년 대공황으로 선진국에 대한 수출길이 막히는 바람에 수입이 약 60% 감소하고 국민소득이 20% 감소하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생활필수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되자 국내에서 이들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화가 이루어져 그 후 8년 동안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중남미 국가들은 전쟁 중인 선진국에 수출을 해 외화를 많이 벌어들였지만 선진국의 생산이 급감해 돈이 있어도 물건을 수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시 생활고를 겪어야 했지만 이러한 위기는 산업화를 다시 한 번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야말로 단기적인 재앙이 장기적인 축복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지금은 중남미에서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자 자원이 풍부한 중남미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이 중남미를 순방하면서 한국과 중남미의 경제 협력은 한층 탄력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남미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중국도 지난주 원자바오 총리가 중남미를 방문해 여러 가지로 경제협력을 제안하며 중남미에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자원이 풍부한 중남미의 한층 높아진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남미로서는 지금이 좋기만 한 상황인가? 그렇지는 않다. 원자재 수출로 달러가 풍부해지자 덩달아서 제조업 제품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남미의 제조업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중남미 국가 정부들은 보호주의의 칼을 다시 빼들고 제조업 제품 수입을 제한하려 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결국 단기적인 기회가 장기적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그럼 한국은 어떤가. 한국 경제는 위기를 먹고 자랐다. 1960년대에는 천연자원이 없어 제조업을 키워야 했다. 외환위기 때 기업은 구조조정을 하고,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노사가 합심해 생산성을 높여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후 연속된 위기에도 한국 경제와 기업은 이를 기회로 삼아 경쟁력을 키워 왔으며 경제가 정상화되었을 때는 더 큰 경쟁력으로 타 국가와 기업을 앞서나갈 수 있었다. 한국은 그야말로 단기적인 위기를 장기적인 기회로 만들어 왔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무엇이 장기적인 위기가 될 수 있는가. 단기적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였을 경우 장기적인 기회는 오지 않는다. 또한 단기적인 축복에 안주했을 때 장기적인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단기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의 부재, 기술개발 능력 약화 등이 원인일 수 있다. 단기적인 축복에 안주해 장기적인 위기를 맞는 것은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 현재에 안주하려는 안일함, 축복을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한 투쟁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위기를 환영하고 축복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종섭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