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 포럼) 北核 저지해 日핵무장 빌미 안줘야 (문화일보 201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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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2년 06월 25일(月)
 
北核 저지해 日핵무장 빌미 안줘야
 
박철희/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학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일본의 원자력기본법 개정이 몰고온 여파를 말한다. 일본은 원자력기본법 변경이 핵(核)무장과 절대 무관하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한국은 연기만 보고 일본이 당장이라도 핵무장을 할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일본이 원자력기본법 제2조 2항에 원자력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문구를 삽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쿄신문과 ‘세계평화 수호 7인 위원회’는 이에 대한 반대를 즉시 표명했고, 한국의 신문들이 호응에 나섰다.

일본은 비(非)핵보유국 가운데 유일하게 핵 재처리가 가능한 국가로서, 핵물질 보유는 물론 핵 기술도 가지고 있어 핵 개발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주변국이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문구가 군사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안다. 일본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핵에 대한 ‘안전 규제’나 ‘보장조치’ 등 다른 표현을 썼어야 마땅하다. 오해를 불식하려면 이제라도 문구를 수정하는 게 깨끗할 것이다. 보수 편향의 산케이신문조차 기본법 개정이 핵무기 제조에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에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한다고 할 정도다.

문제의 발단은 후쿠시마 원전(原電)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독립적인 원자력 규제위원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원자력 발전(發電) 비율을 15% 이내로 내릴 경우, 일본에서 재처리한 연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일본의 기술이 핵 불확산에 공헌할 수 있다는 국제적인 시각과 핵연료 사이클을 유지해야 한다는 안전보장의 관점이 추가됐다. 하지만, 원자력을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클 뿐 아니라 애매하기 그지없다. 주변국의 오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납득할 만한 철저한 설명과 정보 공개가 앞서야 한다.

하지만,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것이란 주장도 너무 앞서가는 논의다. 원자력기본법 제2조 1항에는 ‘원자력의 연구, 개발 및 이용은 평화의 목적에 한정한다’고 적고 있다. 미·일(美日) 간 비밀 합의에 의해 ‘핵무기를 들여오지 않는다’는 한 축이 무너지긴 했지만, 비핵 3원칙은 일본 안보정책의 근간이다. 일본은 핵확산 방지조약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하고 있어 철저한 정보 공개와 사찰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핵연료 사이클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하고자 한다면, 국제사회와 등을 져야 하고 미국에 반기(反旗)를 들 준비가 돼 있어야 하며 주변국으로부터 비판받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또,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이 일본의 핵을 허용한다면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는 막을 길이 없다. 무엇보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은 핵무장에 대한 국민의 알레르기가 매우 강하다. 따라서 개연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현실성은 약한 것이 일본 핵무장론이다.

일본의 핵무장론에는 여론이 비등(沸騰)하면서, 정작 한국에 가장 위협을 주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는 둔감해진 것이 현재 한국의 안보(安保) 인식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보다는 한국과 미국에 적대적인 북한이 한국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것이 일본의 핵무장 유혹을 막는 첩경(捷徑)이다. 중국도 최근 들어 해양 전략을 적극화하고 우주 개발에 나서는 등 동북아시아의 안보 상황에 긴장 요인이 늘어나고 있다.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사회복지라는 포퓰리스트적 공약에는 열심이지만, 외교안보는 등한시하고 있다. 동아시아 속의 대한민국 안보를 종합적으로 재조명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