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 교수](경제시평-김종섭) 외국이 원하는 한국형 원조 (국민일보 20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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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경제시평-김종섭] 외국이 원하는 한국형 원조    2012.06.03 18:12

우리에게 공적개발원조(ODA)라는 말은 이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받지 않아도 되는 나라로 발전했다가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하였다. 한국이 해외에 주는 원조는 2007년에 국민총소득(GNI)의 0.07%였으나 지난해 0.12%로 확대되었으며 2015년에는 0.15%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의 원조금액이 증가하면서 어떻게 하면 원조를 효과 있게 하느냐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선진국들의 원조가 후진국들의 경제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선진국들의 원조가 수원국들의 초등교육 확대에 기여했다든가 말라리아를 줄이는데 기여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만 원조의 궁극적인 목표인 경제성장과 빈곤퇴치에 기여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원조의 낮은 효과에 대해서는 원조 공여국과 수원국 모두 책임이 있다. 수원국의 경우 부정부패로 인해 원조가 빈곤 퇴치를 위해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관료들의 사치품 구입 등에 잘못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공여국으로서는 원조가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제도가 투명한 국가에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여국의 경우 공여국들 간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중복된 사업에 원조를 하는 경우가 많아 원조의 효과가 떨어지기도 한다. 정책 컨설팅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원조의 경우 공여국들 사이에 상반되는 정책 권고를 제시함으로써 수원국에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외원조는 어떤가? 한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기 때문에 경제개발에 관한 경험과 노하우를 저개발국가들에게 전수해줄 수 있다는 큰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선진국들은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다른 선진국들이 저개발국들에게 전수해 줄 수도 없다. 한국의 강점을 활용한 원조를 제공하자는 것이 한국형 ODA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원조를 하자는 것이다. 저개발국들도 이러한 한국의 경험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전수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형 ODA에 대한 우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이 상황이 다르고 문화도 다른 국가에 적용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의 경험이 유례가 없는 만큼 다른 나라에 적용할 때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정책과 조화롭게 시행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원조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도 공여국들 간의 원조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한국형 ODA보다는 한국 경험의 현지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여 전수해 주는 것이 맞는 방법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분야별 경험에 정통하면서도 현지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런 전문가가 한국에 몇이나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게 많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맞춤형 ODA를 제공하기에는 아직 한국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외원조가 양적으로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지만 그 질이 그렇게 빨리 좋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원조의 질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개발경험도 더 잘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특히 원조 대상국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또 원조의 양과 사업 건수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나의 사업이라도 철저한 준비를 통하여 효과 있게 하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종섭 서울대 교수 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