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교수]김정일 사망, 그리고 SNS(경향신문 201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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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3

[시론] 김정일 사망, 그리고 SNS
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정일 사망 소식은 북한과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주요 뉴스가 되었다. 북한 문제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이 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에 중대한 충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일 사후 북한과 한반도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곧바로 17년 전 김일성 사망 직후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김일성 사망 직후 많은 사람들이 북한 체제의 붕괴를 점쳤다. 북한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지만, 체제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북한의 후계체제는 강고했다.

오히려 체제가 흔들린 것은 남한이었다. 소위 ‘조문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참여하고 있었고, 이인모를 송환했던,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김영삼 정부는 예상과 달리 남한 인사의 조문을 금지했고, 보수세력의 역공세가 이어졌다.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주춤하던 보수세력들이 역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남남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남북관계는 급격하게 냉각되었다. 북한은 그 해 12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해 정전협정을 무력화시켰다.

김일성 사망은 다른 한편으로 북·미관계의 급격한 진전을 가져왔다. 북·미대화가 표류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었지만 양측은제네바 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의 합의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남북관계의 악화와 남남 갈등으로 인해 김영삼 정부는 이 협상에서 소외되었다.

17년 전과 유사한 상황이 다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주한 미국대사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새로 임명되면서 대북 정책에 일정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김정일 사망 소식이 알려지기 수시간 전에 북한의 우라늄 농축 동결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의 사망은 남한에서 남남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며, 북·미관계가 급격히 진전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측면들이 있다. 그때와 다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북·중관계다. 1994년은 북·중관계가 악화되었던 시기다. 1992년 중국이 북한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남한과 수교하고, 1993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우호가격제가 폐기되면서 북·중관계는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최악의 상태였다. 그러나 현재 북·중관계는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은 급격히 중국에 기울기 시작했고, 김정일은 지난 2년 동안 중국을 5~6차례 방문했다. 자신의 급작스러운 사망을 예상한 것일까?

따라서 김일성의 사망이 북·미관계의 급속한 진전으로 이어졌던 것이 당시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고립되어 있던 상황 때문이었다면, 현재와 같이 북·중관계가 돈독한 상황에서 북한이 북·미관계의 개선을 통해 대외관계를 풀어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북·미관계가 진전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속도에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며, 당시와 마찬가지로 남한 정부는 북·미 협상에서 소외될 것이다. 또한 돈독한 북·중관계는 김정은 체제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남 갈등은 어떻게 될 것인가? 김정일의 사망은 남남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 사회의 보수세력들이 수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전세의 역전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한국 사회가 변화했다는 것이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직후 지방선거 때 한국 사회는 보수세력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북한 문제가 한국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한국 사회 내부에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총선과 대선 결과가 그랬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도 그랬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버티고 있다.

김정일 사망 소식이 나오기 무섭게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로 넘쳐났다. 그런데 그 내용은 김정일 사망 소식으로 디도스 공격 문제, 정봉주 의원 재판 문제, 학생인권조례 문제 등 현안이 묻혀버리면 안된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남남 갈등이 더 심화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SNS는 그것을 자정할 능력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북한 사회 내부에서 심각한 변화가 나타나거나 남북 간에 심각한 수준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재 한국 사회의 흐름을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보수신문 일색이었던 당시와는 달리 SNS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될 것이다. 현 정부가 SNS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 이상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212102505&code=99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