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 교수] "한나라당 해체 수준 개혁 안하면 신보수세력 나올 것"(세계일보. 20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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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6

 “한나라당 해체 수준 개혁 안하면 신보수세력 나올 것” <세계일보>  입력 2011.10.25 (화) 18:12, 수정 2011.10.26 (수) 08:03

[세계초대석]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안철수 바람’이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당 위기론이 퍼졌다. 한나라당, 민주당의 허약한 기반이 ‘바람의 정치’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안철수로 대변되는 진보의 바람만 분 게 아니다. 보수 진영에서도 바람이 불었다. 그 중심에 ‘보수 진영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한선재단) 이사장이 있다. 박 이사장은 “한나라당이 내부 권력투쟁에만 골몰하고 당 해체 수준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면 한나라당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 지향의 신보수세력이 등장할 것”이라며 “10·26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이 각각 보수, 진보 정당으로서 걸맞은 가치, 정책, 국가전략을 대변하지 못하는 만큼 신보수, 신진보세력의 등장은 시간문제라는 게 박 이사장의 전망이다.

대담=황정미 부국장

선진통일연합 상임의장’은 박 이사장의 또 다른 직함이다. 적극적인 통일운동을 목표로 지난 6월 출범한 조직이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선진’과 ‘통일’을 꼽는 그는 “지금까지 여야 모두 현상유지,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목표로 했지만 북한이 정권 실패로 가고, 중국이 빠른 속도로 군사대국화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분단을 관리하면서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충무로 한선재단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의 가치, 정책을 대변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회의 중심가치, 주류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보수세력이다. 대한민국의 중심가치, 주류적 가치가 뭔가. 자유와 공동체다. 우선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기본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법치 존중, 반부패에 앞장서야 한다. 그 다음에 지속가능한 자유를 위해 공동체를 소중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웃에 대한 배려, 가족의 소중함, 나라 사랑, 자기 역사에 대한 존중 등이 중요하다. 두 가지(자유·공동체) 측면에서 한나라당은 많이 부족하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엄밀한 의미의 근대적 정당이 없다. 정치인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전근대적 사당(私黨), 붕당(朋黨)은 있어도 근대적 가치·정책 정당은 없다.”

―한나라당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어디에 있나.

“지도부에 있다. 확고한 가치 지향성과 국가비전·전략을 갖고 있는 지도부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선거에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 공학이 과도하다. 가장 나쁜 점은 변화를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당과 세상을 바꿀 적극적 의지가 약하다. 결국 리더십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보수의 가치를 지켜나갈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한나라당이 역사적 사명을 못한다는 것을 국민이 확인할 때, 국민 스스로 새로운 가치지향의 정당을 찾아 나설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에서는 시민후보로 이석연 변호사를 내세웠지만 중도 포기했다.

“(이 변호사가) 범보수의 시민후보로 나왔지만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까지를 준비하고 시작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복지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 주민투표에 나선 사람이 25% 정도 되는데 한나라당이 (주민투표에) 너무 소극적이어서 졌다는 분노가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 후 한나라당이 자기개혁을 외면하고 국민을 또다시 실망시킨다면 새로운 가치 세력이 등장하지 않겠나.”

―최근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가 세계에 확산됐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한 시대라는 지적이 많은데.

“그동안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정부가 각종 규제를 풀었는데 큰 방향에선 옳다. 민간 자유와 혁신이 경제발전의 주체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 문제는 금융부문을 일반 생산물 시장처럼 규제를 확 풀었다는 데 있다. 지구적 차원이든, 개별 국가 차원이든 금융규제는 훨씬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금융에 대한 글로벌 거버넌스가 제대로 안 돼 시장시스템을 지속불가능하게 만들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니까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상생발전’ ‘공정사회’가 화두로 떠오른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도 양극화가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세계는 지금 세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 하나는 월가 시위, 두 번째는 유럽의 경제파탄, 세 번째는 소위 양극화다. 월가 시위는 금융규제로 풀어야 한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선진복지시스템의 구조적 위기다. 경제성장률이 높고 젊은 인구가 많을 때 도입된 복지시스템이 성장률이 떨어지고 노년층이 많아지면서 지속불가능해졌다. 선진복지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양극화는 근본적으로 기술 발전과 교육 발전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진전되는데 거기에 맞는 양질 인력이 많이 나오지 못하니 양극화가 생긴다. 양극화 문제를 얘기하면서 복지 정책을 얘기하는데 이건 잘못이다. 본래 대한민국 복지 문제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북한 간) 민족복지의 문제다. 한반도처럼 양극화가 심한 지역이 없다. 두 번째는 어떻게 성장동력을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냐는 국민복지의 문제다. 세 번째가 취약계층 복지다. 정치인들은 민족복지, 국민복지의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은 채 취약계층 복지, 즉 세금복지만 가지고 싸운다. 집권 여당까지도 성장복지, 일자리 복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더구나 민족복지 문제를 풀지 않고 우리끼리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적극적인 통일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권이나 국민 사이에서 통일은 여전히 ‘먼 미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 통일 공론화가 지금 왜 필요한가.

“지금 북한은 정권 실패로 가고 있다. 중국은 2009년을 계기로 평화적인 온건노선에서 대단히 대외팽창적인 패권노선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대외전략이 더 이상 대륙세력에 머물지 않고 태평양세력으로 나오려 하고 북한은 역사를 거꾸로 가면서 국력이 추락한다면 북한에 형성되는 힘의 공백을 누가 메우겠나. 우리가 방관적으로 뒤로 물러서 있으면 결국 북한은 중국에 의해 접수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38선이 휴전선이 아니라 국경선이 된다. 새로운 분단의 시대가 열리고 동북아는 냉전시대로 들어간다. 일본이 무장하지 않을 수 없고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는 속에 남한의 선진화 프로젝트도 실패할 위험이 많다. (북한) 나진·선봉에서 배가 떠서 상해로 가면 대한민국은 중국의 내해에 있는 섬이 된다. 반면에 우리가 통일을 이루면 남북 경제의 시너지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만주와 극동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동북아가 21세기의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역사가 어느 길로 갈 것이냐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인가.

“정권은 붕괴되겠지만 체제 붕괴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에 친한(親韓)통일세력이 등장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설사 손댈 수 없는 상태여서 우리가 (북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북한 동포 중심으로 한 친한통일세력에 권력을 맡기는 게 옳다. 지금 단계에선 자발적인 친한세력이 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북한 주민에게도 통일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이웃 나라에도 분단이 아니라 통일이 그들에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통일외교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전략 동맹과 ‘태평양 파트너십’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한·미 동맹 강화와 더불어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한·미 동맹은 계속 강화시켜야 한다. 중국과의 선린정책도 지금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하는데 아직은 대단히 미흡하다. 중국에 확실히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통일을 하겠다고. 중국은 강하지 않은 나라의 말은 듣지 않는다. 우리가 자강노력을 하면서 중국에 통일을 하겠다,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관계를 강화하고, 군사적으로는 한·미·일 동맹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연결해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유럽을 엮는 안보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

―내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변 4강 중 3강(미·중·러) 권력이 교체되는 시기다. 무엇이 시대정신이라고 보나.

“선진과 통일이 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고용창출형 성장전략, 교육개혁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이냐가 중요하다. 민족복지를 위해 통일 전략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도 중요하다. 이런 시대적 과제를 풀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 그게 아니라 무상복지 시리즈로 간다면 선진화에 실패한 라틴아메리카가 갔던 길을 걷는 것이 된다.”

박 이사장은 보수 진영에서 ‘잠룡’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그에게 내년 선거에서 새 국가전략을 갖고 국민 앞에 나설 의향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뭔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생각이 등장해야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면서도 “내가 정치권에 들어가봐서 알지만 (선거는) 세력과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나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럽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을 아주 닫은 답변은 아니었다.

사진= 남제현 기자 bird@segye.com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약력

●서울(63) ●서울고·서울대 법학과·일본 도쿄대 대학원 경제학과·미 코넬대 경제학 석·박사 ●서울대 법학과 교수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사회복지수석비서관 ●한국개발연구원 정책대학원 초빙석좌교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정책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