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교수]서울대 법인화의 함정(경향신문 201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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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5

 [시론]서울대 법인화의 함정


몇년 전 나왔던 광고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카피가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이 다 ‘맞다’고 할 때 ‘틀리다’라고 할 수 있는 용기. 처음에는 그저 광고 카피의 하나려니 하였지만, 갈수록 여운이 남았다.

우리 사회는 유행에 민감하다. 남이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타인화되지 않고 사회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최근 ‘화성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많은 관심을 끄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 대학 총장 직선제 문제가 제기되면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 광고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교육과학기술부는 총장 직선제의 시행을 국립대학 부실 기준의 하나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총장 직선제가 학교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총장 직선제의 폐지는 서울대 법인화에서도 중요한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총장 직선제가 일부 대학에서 폐단을 보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일부 폐단 때문에 총장 직선제를 일거에 폐지할 수는 없다. 과거 정부가 임명했던 총장은 학교와 학문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반해 선거로 선출된 총장과 학장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교직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권위와 자율이 부여됐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세계적으로 선거에 의해 총장을 선출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총장 임명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공산국가 외에 어떤 나라에 있을까? 서울대의 경우 새로 시행될 법인화법에 의하면 이사회가 총장을 임명하고, 총장이 학장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고, 그 이사회에는 정부의 관료들이 당연직으로 참여하게 되어 있다. 이들이 전체 이사 수의 5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정부의 재정보조를 좌우할 수 있는 이들의 영향력은 불문가지다.

대학과 학문의 발전을 위해 학교가 행정부의 재정 통제로부터 벗어나 핵심적인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육과 환경의 자율성과 다원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산업화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통해 한국의 학문적 수준이 급성장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율성과 다원성은 학문과 학교가 정치와 사회적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물론 학교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서 총장을 선출하는 방식에 차이를 둘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학교 구성원들의 견해를 무시한 채 임명하는 수장은 결코 대표성을 가질 수 없으며, 정치적 압력에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총장 밑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 지난주 서울대 교문 위로 올라갔던 한 학생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2016년 서울대 70년사를 쓰게 된다면 뭐라고 쓸 것인가? “60년이 넘도록 유지되었던 국립 서울대학교가 국회에서 날치기된 법령으로 법인화가 되었고, 이를 통해 구성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사회가 총장 선출과 학교 운영에 전권을 행사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라고 쓸 것인가? 그래서 재정운영에 자율성은 갖게 되었지만,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과거의 시스템으로 되돌아갔다고? 중요한 것은 법인화 여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난 60년간 서울대학교에 과분한 사랑을 준 시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학문의 자율성과 다원성을 지키면서, 모든 구성원이 교육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 : 2011-09-28 19:43:07ㅣ수정 : 2011-09-28 19: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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