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 외]]"한국, 美·中 사이 명민(明敏·prudent)외교 펴야", "日서 실패한 무상시리즈 왜 베끼나"(조선일보 20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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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5

[인터뷰]"한국, 美·中 사이 명민(明敏·prudent)외교 펴야", "日서 실패한 무상시리즈 왜 베끼나"

학계 손꼽히는 중·일 전문가 2인… 한·중 외교, 대일 인식 신랄한 진단

"한·중 관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정재호 교수) "일본 정치권이 실패한 길을 우리 정치권이 따라가려 한다."(박철희 교수) 국내에서 각각 중국과 일본 전문가로 손꼽히는 두 사람의 진단이 신랄하다. 서울대 정재호 교수(정치외교학부)와 박철희 교수(국제대학원)는 각각 서울대출판문화원을 통해 출간한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와 '자민당 정권과 전후(戰後) 체제의 변용'에서 우리 외교의 난맥상과 일본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했다. 두 사람 모두 20여년간의 연구를 결산했다는 책은 500쪽 가까운 분량에다 내용도 깊다. 지난 1일 각각 인터뷰했다.

[정재호 교수 "中, 한국 깔보기 시작"]
한·중 관계, 한·미 관계 닮아갈 것…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아닌 사안별 일관성 있는 기록의 외교를

―1992년 한·중 수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했다.

"전략 없이 서두른 게 문제다. 4개월간 4회 예비·본회담에서 기 싸움에 밀렸다. 당시 중국측 수석 협상 대표는 '첫 회담 끝내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날 것 같다'고 했다. 한국측 수를 다 읽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임기 내 수교, 대통령 국빈 방문을 목표로 두고 협상팀을 다그쳤다. 6·25전쟁에 대한 중국의 유감도 못 받아냈다. 그때 우리 요구가 제대로 있었다면 시진핑이 6·25를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정재호 교수는“새 책을 쓰는 과정에서 모두 190명의 정책결정자와 외교관, 학자 등을 심층 인터뷰하고 3회에 걸친 미·중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도 담았다”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그후 대중 외교는?

"중국은 수교 후 얼마간 한국을 압축 성장의 모델로 여겼다. 하지만 1998년 한국이 IMF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한국 모델 버리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2000년 마늘 분쟁 때 한국 외교를 깔보기 시작했다. 그런 태도가 2004년 동북공정 때 재연됐다. 내년 중국의 청사(淸史)공정에서 다시 영토와 한반도에 대한 인식이 드러날 텐데 문제는 반복될 수 있다."

―MB 정부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도 비판했는데.

"3명의 대통령이 저마다 양국 관계 명칭을 바꿨다. '협력적 동반자'(김대중 정부), '전면적 협력 동반자'(노무현 정부), '전략적 협력 동반자'(MB정부)…. 바뀔 만한 전환점이 과연 있었나. 수사에 급급한 외교는 주변국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대중 외교의 짝이 대미 외교인데.

"시간이 갈수록 한·중관계가 한·미관계를 닮아갈 것이다. 중국은 점점 한국이 미국에 해왔던 것처럼 자신들에게 해주길 원할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할 말을 하는 관계로 가지 않으면 중국에도 그렇게 해줘야 할 것이다. 미·중 양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양국 모두에 할 말은 할 것인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미·중 등거리 혹은 양다리 외교가 방안이 될 수 있나.

"정치적 수사라면 몰라도 과연 우리 같은 나라가 선택을 안 해도 될까. 당장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봐도 그렇다. 시간이 갈수록 선택을 강요당하는 코너에 몰리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안별로 일관된 입장 유지가 중요하다. 사전에 일관된 태도를 보이면 미·중 간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불필요하게 연루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명민(明敏·prudent) 외교다.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아니라 사안별 일관성 있는 기록의 외교를 펴야 한다."

―우리 외교에 결정적인 것이 미·중관계라고 했다.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미국은 일방주의 DNA와 예외주의라는 철학적 기초에서 200년을 살아왔다. 그것도 최정상에서. 중국은 중화주의 유전자에 제국을 경영한 경륜이 있다. 중국은 정상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을 CEO라고 보면 된다. 중국은 종합적인 국력에서 미국과 비슷하다는 판단이 들면 자신의 판을 깔려고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미·중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는 미리 현안별 입장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박철희 교수 "日은 이제 반면교사"]
한국은 戰後의 일본을 모르고 일본은 戰前의 자신을 몰라… 한국, 日 따라하면 위험 훨씬 커

―우리가 일본을 너무 모른다고 썼는데.

"한국은 전후(戰後)의 일본을 모르고, 일본은 전전(戰前)의 자신을 모른다. 우리는 일본을 너무 정서적으로 이해한다. 중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상호 몰이해가 계속될 경우 선택지를 좁히는 결과가 된다."

 
▲ 박철희 교수는“한국은 전후(戰後)의 일본을, 일본은 전전(戰前)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이 양국 관계를 어렵게 한다. 그 결과 중국의 부상을 앞에 두고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고 했다. /채승우 기자

―전후 일본 정치를 간략히 정리하면.

"보수 자민당이 혁신세력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정국을 주도해왔다. 우리는 자민당을 한통속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리버럴과 온건 보수, 급진 보수 세 흐름이 있어왔다. 그 균형이 깨지면서 자민당이 무너진 것이다. 국가체제를 틀 짓는 데는 성공했지만 극단적으로 오른편으로 가려다가 심판받은 것이다."

―20년간 총리가 14명째 바뀌었다.

"향후 5년까지 단명 총리가 이어질 것이다. 양원제로 인한 '뒤틀림 국회' 현상 때문이다. 정치권이 민의를 제대로 반영 못하니까 중간 심판 격인 참의원 선거에서 패하고, 여당은 총리만 계속 바꾸고 있다. 생활정치 주장하던 민주당에 기대가 높았지만 집권한 하토야마 총리는 대등한 미·일관계 주장하며 비전이나 현실 대안 없이 후텐마기지 문제삼다가 실패했다. 또 여러 선심성 공약을 약속했다가 작년 참의원 선거에서 심판을 받았다. 정치 개혁 이후 '작은' 정치인밖에 없는 것도 고민거리다. "

―일본이 표류하는 이유는.

"냉전체제 후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첫째, 부상하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뚜렷한 전략을 못 갖췄다. 고이즈미는 미·일동맹 강화 통해 중국에 맞설 생각이었다. 한국은 중국편이라고 봤다. 그러다 한·중과 갈등이 잦았다. 민주당은 아시아 신뢰관계와 미·일동맹을 같이 추구했는데, 사실상 미·일관계 비중을 낮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공은 못 한 채 방향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있다. 경제도 침체하면서 세수는 안 걷히고 고령화로 사회복지 부담은 늘어나 재정 적자도 커지고 있다."

―이대로 몰락하는 건가?

"세 가지 강점은 여전하다. 일본의 공공 부문이나 정치는 경쟁력이 낮지만 민간 부문은 경쟁력이 높다. 그다음 기술과 교육이 좋다. 노벨상 수상자가 14명이다. 원천 기술은 일본이 훨씬 강하다. 마지막으로 잘 훈련된 국민이 있다."

―일본의 경험에서 뭘 봐야 하나?

"일본은 이제 '반면교사'에 가깝다. 정치·경제·사회 시스템 측면에서는 본보기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도 국내에 일본의 TV 프로, 와인 열풍, 로스쿨, 도쿄대(서울대) 법인화 등이 시차를 두고 들어온다. 심지어 정치권 공약도 그렇다. 지금 회자되는 무상급식·무상교육·무상의료가 일본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아동수당 지급, 고교 무료화, 농가 부채 보전), 선심성 공약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맥락을 잘 알고 들여와야 한다. 특히 고령화에 대해서는 일본에 대해 공부해야 할 게 많다. 사회복지를 펴면서 재정 균형을 맞추는 데 일본은 실패했다. 이걸 빨리 공부해서 피해야 하는데 자꾸 베끼려 한다.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적 구조이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어서 위험 부담이 훨씬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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