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식 교수]국제경쟁력 저하가 불러온 南유럽 재정위기(조선일보 20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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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5

[글로벌 포커스]국제경쟁력 저하가 불러온 南유럽 재정위기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남유럽은 만성적 무역적자인데 유로貨 도입후 환율 평가절하로 수출경쟁력 높이는 게 불가능
채권국은 그리스 빚 탕감하고 한·중·일도 유럽 국채 사들여 유로존 지원하면 국익에 도움

남유럽의 금융위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열린 유럽정상회의에서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과 동시에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투자자에 대한 채무 재조정의 원칙이 부분적으로나마 합의됐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의 불똥은 다시 한 번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질 수 있다. 나아가 위기가 이들 국가로까지 전염된다면 유로존 전체가 붕괴될 수 있고 이는 유럽을 넘어 다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전개될 수도 있다.

남유럽이 이러한 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남유럽 국가들의 과도한 복지정책과 이로 인해 누적된 막대한 정부부채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재정문제가 원인이라면 세계에서 정부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일본도 벌써 금융위기를 맞이했어야 한다.

남유럽 재정위기의 본질은 국제경쟁력 저하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유로화 출범 이후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독일 같은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나 물가 상승률이 높아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고 유로지역에서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유로화 도입 전 남유럽 국가들은 독일에 비해 금리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금리차익을 노린 막대한 자금이 남유럽 국가들에 유입됐고 이러한 자금 유입은 버블을 발생시키는 등 이들 국가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이런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금유입이 축소되자 위기가 왔다. 수출경쟁력을 높여 경상수지를 개선시켜야 했으나 유로화 도입 이후 환율 평가절하가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삭감을 하고 가격을 낮추는 등 장기간에 걸쳐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통해서만 경쟁력을 제고할 수밖에 없다.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나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이 빠르게 위기를 벗어나게 된 것도 기본적으로는 환율의 대폭 절하에 의해 한국 기업들이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남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유럽국가들이 재정협약 외에 이른바 '유로협약'을 체결해 경쟁력을 제고하고자 한 것도 이러한 배경하에서다.

그러면 과연 남유럽 재정위기가 유럽 전체로 전파될 것인가? 그리스 위기의 전염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스페인·이탈리아는 자체적으로도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견실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는(too big to fail)' 경제 대국이다. 스페인은 저축은행 부실이라는 뇌관을 안고 있지만 효과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고 정부재정도 건전한 유럽경제의 마지막 교두보이다. 이탈리아도 경쟁력이 높은 제조업을 가지고 있다. 실상 금융시장도 현재로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가 또 다른 도미노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리스나 포르투갈 국채(國債)의 독일 국채에 대한 금리격차는 10% 이상으로 나타나는 반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국채의 금리격차는 3%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확산 여부는 그리스 위기가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스의 유로화 탈퇴와 이에 따른 평가절하만이 장기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보이지만 유럽통합의 역사를 볼 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그리스의 전면적인 채무 재조정으로 귀결된다. 현재 이와 관련하여 민간투자자들의 고통분담을 둘러싼 몇몇 유럽국가 간 갈등이 존재하지만 결국 독일이나 프랑스 등 그리스에 대한 채권국 및 민간채권 보유자들은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에 합의할 것이다. 그리스가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로존 전체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남유럽 금융위기의 차단과 관련하여 한국도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이미 개별 남유럽 국가의 국채 또는 유럽금융안정기구가 발행한 채권 등에 대해 구입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적극적인데 중국은 이러한 금융지원을 대가로 유럽의 기술이전이나 유럽시장에서 중국 상품의 판매 확대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남유럽의 금융위기가 확산된다면 한·중·일 중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는 국가는 한국이다. 따라서 한·중·일 재무장관 회담 등을 통해 공동으로 유럽의 국채, 특히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국채를 구입하는 등 유로권의 금융안정을 지원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들 유럽국의 국채를 공동으로 구입하는 것은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해 온 국제 금융질서에 있어 아시아도 주도적이고 책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첫걸음일 뿐 아니라 3%에 이르는 높은 금리차액을 실현시킬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01/20110801018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