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미·일서 나오는 한·미 동맹 약화론 기민하게 대응해야 (중앙일보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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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8

한국에선 그다지 주목도 하지 않고 누구도 아직 예상하지 않는 주한미군 철수론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방한했던 존 햄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소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으려고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워싱턴DC에서 개최된 중앙일보-CSIS 포럼 전날 만찬 석상에서도 진지하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에서 별걱정을 안 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느닷없이 예고도 안 한 채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다시 한번 제기했다. 워싱턴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주한미군 철수론 내지 한·미 동맹 약화론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때다.

주한미군 철수론 트라우마
 
한국은 세 번이나 있었던 주한미군 철수 내지 감축론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는 1950년 1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의 전략적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아픈 기억이다. 애치슨라인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아니라고 하여도 적어도 애치슨라인이 김일성에게 한국전쟁을 일으킬 전략적 판단을 서두르게 한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미국이 다시 한국 방어에 나서긴 했지만, 한국전쟁의 참화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두 번째는 1970년 닉슨독트린 발표 이후 주한미군 2만명 감축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에 맡긴다는 닉슨 독트린은 베트남전에 지친 미국에는 이해할만한 것이었지만, 안보를 미군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에는 충격적 선언이었다. 이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유신체제를 선언하는 정치적 빌미를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주 국방력 강화를 위한 중화학 공업화의 계기도 되었다.

세 번째는 1979년 카터 미국 대통령에 의해 제기된 ‘주한미군 철수론’이었다.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선언하여 정권 말기의 박정희 대통령과 불화를 빚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인해 주한미군 철수론은 물 밑으로 잦아들었지만, 한국에는 또 한 번의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위에서 논의한 주한미군 철수론이 한국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은 미국의 결정이 한국의 요청이나 한반도의 사정과 무관하게 미국 정부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미 동맹이나 주한미군의 위상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한·미동맹 약화론이나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한·미·일 등 ‘동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 염려스럽다. 첫 번째는 트럼프발 ‘주한미군 철수론’ 제기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가지고 “내가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루었다”고 말하고, 이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진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할 가능성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주장을 받아들여 ‘도발적인(provocative)’ 한·미 훈련을 중단하고 돈이 많이 드는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축소·중단한 선례를 생각해 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주변에 이를 제어할 참모들도 많지 않다.
  
우려되는 트럼프의 상업주의적 안보관
 
또 하나의 트럼프발 주한미군 감축론 제기 가능성은 올해 시작된 방위분담금 협상이 삐걱거리는 경우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이 50억 달러 정도의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시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 많은 잘 사는 나라인 한국을 왜 미국이 지켜줘야 하느냐는 논의가 미국 내에서 심심치 않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도 주의해 볼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 분담비를 더 부담하지 않으면 돈을 내지 않는 만큼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분담 비용 대비 비례적 미군 감축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안보에 대한 전략적 사고보다는 동맹을 돈으로 환산하는 ‘상업주의적 안보관(transactional security)’을 가졌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설마’라고 치부할 일만은 아니다.
 
두 번째는 한국발 ‘동맹 약화 수용론’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을 약화하는 것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다. 이미 북한과의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해 한국은 비무장지대 주변 항공 정찰을 포기하고, 북한이 강하게 요구하는 한·미 연합훈련 중지에 동조한 상태다. 나아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은

북한의 비핵화 유인을 위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선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에는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기고를 한 바 있다. 2018년 2월에는 “한국 대통령이 주한미군에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고 까지 공언했다. 문 특보는 또 2018년 5월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단기·중기적으로는 한·미 동맹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동맹체제를 다자안보 협력체제로 전환하기를 희망한다”고 하면서 한·미 동맹의 상대화에 힘을 실었다. 2017년에는 “한·미 동맹이 깨진다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평화우선론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들은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을 위해서는 한·미 동맹의 약화나 해체까지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한국발 동맹 약화론이다.
 
셋째는 일본발 ‘한국 방기론’이다.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다. 외교적 갈등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 보복 조치로 발전했던 갈등 관계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거부에서 나타나듯이 안보 협력의 거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한국 피로증’을 넘어서서 한국과 관계를 단절하자는 ‘단한론(斷韓論)’까지 제기하고 있다.
  
현상 분석해 기민하게 대응해야
 
올해 일본에서 발행된 방위백서에서 한국은 호주·인도·동남아에 이어 네 번째 거론되는 등 전략적 우선순위가 하강 국면에 있다. ‘한국이 중국에 지나치게 순응한다’는 중국 경사론도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신뢰에 기반을 둔 우호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들 논의가 일부 우파 강경론자들의 한국 혐오증에 불과하다고는 할지라도, 한국이 지속해서 미국과 행동을 같이할 신뢰할 만한 파트너인가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를 방치할 경우 일본에서 한국을 버리고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자는 ‘비 전략적 방기론’으로 발전할 소지가 있다.
 
네 번째는 북한발 ‘한·미 동맹 해체 요구’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 나선 이후 한·미 동맹 해체나 주한미군 철수를 섣불리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대신 남북한 경제 협력이나 평화선언의 추진을 상응 조치로 요구하다가, 북한 경제를 힘들게 하는 대북 제재 완화를 강하게 희망해 왔다. 하지만, 최근 스톡홀름 실무회담을 보면 북한이 체제 안전 보장을 들고 나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노이 회담 결렬 당시 이용호 외상은 군사적 조치는 아직 이야기하기 이르다고 했지만, 이제는 체제 안전 보장을 위한 군사적 조치를 논의할 시점에 왔다는 판단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은 향후 자신들의 안보에 위협을 주는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의 약체화에 힘을 실어갈 공산이 크다. 북한은 체제 안전 보장 요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하나 당장 현실화될 개연성은 없지만, 가능성으로의 영역에 접어들고 있다. 신호등 색깔이 변화하고 있다. 현상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