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 李총리 訪日과 한·일 갈등 돌파구 (문화일보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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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8

일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오는 22일 일본을 방문한다. 이번 이 총리 방일(訪日)이 잔뜩 경색돼 있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촉매제가 되길 바라는 여론이 많다. 본인에겐 부담이겠지만, 정부 내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통인 이 총리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총리는 국빈급 초청 인사들과의 공식적인 만남 외에도 24일 개별 회담을 하기로 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이 총리가 한·일 관계 현안에 대한 협상 전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일본도 한국에 무엇을 양보할 수 있을지 정해진 게 없는 상태다. 적어도 이 총리는 관저 및 자민당의 중진들과도 만나는 등 광폭 횡보를 통해 한·일 관계 경색을 풀 방안을 논의하고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 경색에 마침표를 찍지는 못하더라도 새로운 협상의 시작을 마련하는 물꼬는 틀 수 있다. 

한·일 갈등의 근본에 놓여 있는 징용 판결에 대한 이견을 조정하는 지혜를 짜내는 데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가 안(案)을 내고, 수용 가능 여부를 저울질하고, 정치적 타결을 도모하는 데는 적어도 1년은 소요될 것이다. 한국 측으로서는 내년 4월 총선 이전에 안을 제시하는 것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1년 정도 이내에 한·일 간 협상을 통해 징용 문제에 대한 타결을 모색하는 것을 시야에 둔 협상 개시를 선언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협상으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해서는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더는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명시적 또는 암묵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시한폭탄은 11월 22일로 종료되는 한·일 지소미아에 대한 결정이다. 이미 국가안보회의(NSC)는 8월 22일 지소미아의 연장을 거부했지만, 이 결정은 일본엔 충격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을 화 나게 만들었다. 한국에 동정적이던 미국을 일본 편으로 돌린 악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총리는 일본에 향후 수출 규제를 철회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을 전제로 지소미아를 연장할 용의가 있음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일본이 수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략적 수출 품목의 적정한 관리를 명분으로 한 수출 규제인 관계로 정상화하려면 적어도 6개월 정도의 시한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징용 문제에 대한 별도 협상이 진전된다는 전제 아래서 얘기다. 또한, 한·일 협상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현재 압류 중인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를 협상 중에는 동결한다는 특단의 조치도 필요하다. 원고인단과 변호인단이 이를 거부할 경우, 우리 정부가 나서서 먼저 보상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동원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일 간의 갈등은 과거사 인식 불일치가 외교 갈등으로, 외교 실패가 경제 마찰로, 경제 분쟁이 안보 협력의 거부로 확산된 양상이다. 이를 원상회복하기 위해서는 안보 갈등을 촉발한 지소미아를 연장해 미국으로부터의 신뢰를 다지고, 일본 자산의 현금화를 당분간 동결 또는 유예하는 조치를 통해 일본 측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이후 6개월 정도를 목표로 수출 규제 철회를 향한 경제 협상을 통해 수출관리 체제를 안정화한 후, 외교적 협상을 통해 1년 이내에 징용 문제에 대한 타결점을 찾는, 시차를 둔 협상과 협의 진행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강박 관념을 버리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