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인터뷰) "韓정부 참여하는 징용 배상안 만들어 日과 협상 나서라" (매일경제 20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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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인터뷰] "韓정부 참여하는 징용 배상안 만들어 日과 협상 나서라"

일본전문가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사진설명지난 8일 도쿄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철희 교수는 "요즘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답답해져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국내 학자 중 대표적인 `일본통`인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56)는 지난달부터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다. 도쿄대가 전 세계 주요 학자를 초청해 의견을 듣는 도쿄칼리지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이달 말까지 체류할 예정이다. 지난 8일 도쿄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에게선 평소 듣기 힘들던 강한 단어들이 연거푸 터져나왔다. 그는 "요즘 한일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답답해져서 나도 모르게 톤이 강해진다"고 말했다.지난 30년간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양국 관계를 봐온 그로서도 지난 한 달여간 일본에서 경험한 분위기가 퍽 낯설다. 그 어느 때보다 나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는 "수출 규제 조치가 그간 양국 간 협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기업을 정조준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양국 간 갈등이 지속될수록 버팀목 역할을 했던 협력의 고리들마저 끊길 수 있어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이 한국 수출 규제에 나섰다.

▷경고와 보복이 혼재돼 있다. 수출 규제는 1탄이라고 생각한다. 2탄, 3탄이 언제든 나올 수 있다. 한국의 대응에 따라 추가 조치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이번 조치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참의원 선거(21일)를 의식한 조치란 평가가 많다.

▷선거에 맞췄지만 선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슈가 터져나오는 선거 시기라서 제기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평소라면 수출 규제 등에 대한 역풍을 염려해야 하지만 선거 기간이라 다양한 이슈에 역풍이 묻힐 수 있어 추진했다는 것이다. 즉 이번 규제를 단순히 선거용 전략으로 봐선 안 된다는 얘기다(4일 참의원 선거전이 시작된 후 일본 언론 등에서 한국 관련 뉴스의 비중은 크게 줄었다).

―일본에선 한국 정부가 방치했다고 비판한다.

▷현재 우리 정부는 사실 인지가 늦다. 전 정권에 비해 더 심하다. 공무원 사회에서 적폐 또는 친일로 분류돼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있어 듣기 싫어하는 보고는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이번 수출 규제만 해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알고 있었을 텐데 청와대에 제대로 보고가 됐을지 궁금하다. 일본이 강하게 나올 때 대응하는 것은 이미 늦다. 일본이 바라던 것보다 4~5개월 늦은 것이다. 급한 일부터 처리하다 보니 일이 터져야 대응에 나서는 한국적 정책 결정 시스템의 문제다. 이번 조치로 일본은 한국 경제의 급소를 찔렀다. 한국 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진 않겠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한일 기업이 참여하는 이른바 1+1을 우리 정부에 제시했다. 일본 입장에선 이미 연초에 거부한 것을 한국이 왜 들고나온 것인지 의아해한다. 다만 한국 정부가 대안을 모색하길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있다. 추가적 협의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추가적 협의안은 어떤 형태가 있나.

▷2+(1) 정도면 어떨까 싶다. 2+1과는 다른 것이다. 2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다. 정부에서 전후 적산가옥 등 귀속 자산을 매각해 이를 예산으로 썼다. 또 포스코 등 민영화에서 얻은 자금이 국고로 들어온 것도 있다. 이런 자금들을 활용하면 추가적 예산 부담이나 국민감정 손상 없이 진행 가능하다. 일본 기업들의 참여는 과거에 대한 배상 등의 형태로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 입장에선 과거 배상에 자국 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제를 뒤흔드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들 후손의 교육, 장학, 복지, 의료 등을 지원하는 형태로 `미래 협력을 위한 자금`을 명목으로 하는 일본 기업 참여는 가능할 수 있다. 배상이 아닌 다른 명목이란 점에서 +1이 아닌 괄호를 붙인 +1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안을 들고 일본 측과 외교적 협상을 추구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협의해야 한다. 진정성과 수용 가능성을 고려해 접근하면 일본도 응할 것이라고 본다.

―언제쯤 협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나.

▷일본 참의원 선거(21일)와 광복절이 지난 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8월 말 이후부터 연말까지 다양한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기간 한국 기업과 국민,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와 국회에서 수출 규제에 대한 철회를 요청하고 있다.

▷일본이 이미 발표한 조치를 철회하는 것은 단기적으론 불가능하다. 이번 규제는 선언적 조치다. 운용에 있어 유연하게 할지, 경직되게 할지에 따라 실제 규제의 여파는 달라질 것이다. 한국에선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는 면도 있다. 대책이 없으니 대책회의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에선 `통하네`란 생각을 할 것이고 규제 카드를 더 꺼내 들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수출 규제는 절차가 복잡해지는 것이지 수출금지가 아니다.

―수출 규제로 우리 기업이 입을 피해에 대한 염려가 높다.

▷한일 협력을 통한 윈윈의 상징이던 반도체 제조사와 소재업체의 협력 관계가 모두 지는 게임의 구도가 돼버렸다. 청와대와 정부가 책임을 다른 기관 등에 전가하는 무책임의 체계화, 위험의 외주화의 연쇄현상이 빚어낸 결과다. 일본 역시 피해가 클 것이다. 반도체 등 공급 차질로 글로벌 공급망이 왜곡되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평판이 나빠질 위험이 있다. 여기에 우리 기업들의 탈일본이 가속화되고 결국 이는 한일 기업·산업 간 연결고리를 더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 대북제재 위반 등까지 암시하고 나섰다.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논란이 되는 물질(고순도 불화수소)은 최첨단 소재인데 이를 가져다 독성가스나 미사일 정도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이걸 뭐하러 가져가겠는가. 만약 북한으로 넘어간 게 있다면 우리가 비난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다음달 중순께 이뤄질 전망이다. 그때까지 한일 간 협의가 가능할까.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안보와 관련된 것이다. 이는 수출 규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이 부분은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야 한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사실 해서는 안 되는 조치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은 비우호국이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폐기하는 것이다. 이를 제3국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수출 규제가 기분이 상하는 정도의 문제라면 이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다. 한일이 이미 다리를 건넌 상황에서 중재할 수 있는 것은 미국뿐이라고 생각한다. 안전보장상 문제인 만큼 미국이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는 양국 모두 강경 모드다.

▷외교는 밀당이다. 외교에서 100%의 전략은 불가능하다. 4월 세계무역기구(WTO)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분쟁에서 승소했다. 우리가 이겼기 때문에 일부를 완화하는 방안 등도 검토해볼 만하다. 군마나 도치기 등 내륙지방에 대해서는 수입 제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허용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조건을 분명히 붙이면 된다.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카드가 더 있나.

▷북한 문제다. 상호 간에 해결되면 윈윈하는 구조다. 일본 정부가 중시하는 납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역할을 하는 식이다. 대신 일본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ID)가 이뤄지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식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자로서 일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야 한다. 현재 양국은 모두 과거사라는 하나의 트랙에서만 보고 있다.

■ 강경한 文·아베에 누구도 말 못해…결국 국민만 피해
30년 한일관계 지켜봤지만 지금 같은 관계 악화는 처음…일부 민족주의자 발언만 들려

―일본 사회 분위기가 어떤가.

▷출장은 자주 왔지만 1개월 이상 거주는 10년 만이다. 전반적으로 싸늘하다. 한국에 대해 체념한 듯하다. `한국과 협력할 수 있을까`란 의심이 늘었다. 만나지도 않으려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데 바닥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싶어진다.

―한국과 일본에서 보는 온도 차이는 어떤가.

▷가장 안타까운 것이 친한파로 분류되는 사람들마저 돌아선 것이다. 한국에 대해 애정이 있는 분들도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다. 양국 간 소통이 부족하다 보니 파이프라인이 얇아졌다. 과거엔 2m짜리였다면 이젠 30㎝ 수준이 된 듯하다.

―왜 이리 악화됐나.

▷과거엔 일본이 과거사로 자극하면 한국이 과잉 반응하는 구조였다. 이번엔 한국이 문제를 방치하고 수습도 안 하자 일본이 반발하는 식이다. 외교는 협상과 대화인데 양국 정부가 모두 원칙과 법리만을 내세우며 상대를 징벌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결국 피해는 국민과 기업들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다. 양국 모두 정치 리더십이 강화된 결과다. 청와대와 총리관저가 강하니 다들 말을 못한다. 한국에선 적폐로 몰릴까 무서워, 일본에선 총리관저의 의중을 따라가는 `손타쿠`가 심하다.

―여론이 돌아선 것인가.

▷조직된 소수가 강한 목소리를 낸다. 양국 모두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세력들의 의견만이 증폭되고 있다. 양국 사회 모두 이런 의견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단순화의 오류에 빠져 있다.

―양국 관계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우리가 도덕적 우위에 있고 그만큼 우리의 지적이 정당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늘면서 프레임이 바뀌고 있다. 한국의 비판이 전후 세대에겐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친한, 반한에 상관없이 일본인들은 한국이 일본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본과 대등하다고 생각하면서 피해의식이 강한 한국은 이런 일본의 반응에 다시 반발하는 식이다.

―양국 정상이 바뀔 때까지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체제에서 비약적인 관계 개선은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위기 관리, 추가적인 악화를 막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He is… △1963년생 △1986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98년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 △1999~2002년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조교수 △2002~2004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2004~현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2012~2016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소장 △2017년 현대일본학회 회장 △2016~2018년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2005년 제1회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수상

[도쿄 = 정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