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오피니언 포럼) 北核 실무회담 필요성과 3대 원칙 (문화일보 2019.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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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이후 정체됐던 북한과의 대화 모멘텀 찾기가 서서히 가동되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실무회담이 정상회담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대화의 실마리를 실무회담으로부터 찾을 것을 천명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의 미·중,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을 방문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북한에 대화에 나설 것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미국도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거듭 밝히면서 북한의 태도 결정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이라는 트라우마는 남북한과 미국 등 주요 당사국들에 남아 있다. 하지만 하노이 정상회담은 미국과 북한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려준 좋은 계기였다. 역설적으로, 제재가 효과 있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줌으로써 북한이 비핵화 행동을 단행해야만 제재가 풀릴 수 있음도 알려줬다. 아울러, 하노이 회담은 그때까지 정상들 간의 톱다운 방식에 의해 비핵화의 입구에 들어섰지만, 출구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실무자들에 의한 다양한 공식, 물밑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정상들의 통 큰 결단은 지도자들의 개인적인 감성이나 확신이 아니라, 시스템 내에서의 촘촘하고도 다양한 시나리오에 기반한 전략적 결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다시 북한과의 대화 물꼬가 트인다면 실무회담이 선행돼야 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부터의 비핵화 대화는 포괄적인 분위기 조성에 있는 게 아니라, 기술적이고 전문적이며 정교한 사실 확인과 상대방의 의사 타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실무회담의 지속성 있는 진전을 위해선 다음 세 가지에 착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비핵화 개념의 정의가 서로 분명하게 확인돼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개념 속에는 북핵(北核) 프로그램에 관련된 생산시설, 핵물질, 작업 인원, 이미 생산된 핵무기와 배치 지역 등 전체상이 포함돼야 마땅하다. 이들이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파기되려면 비핵화의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둘째, 모든 핵 프로그램을 단숨에 없애기란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단계적 이행 로드맵의 작성이 필수다. 무엇보다도 영변을 포함한 2∼3개의 핵심 시설이 첫 단계에 포함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초기 선제 이행(frontloading)’ 방식이 적용돼야 한다. 또한, 북한 입장에서도 한·미의 행동을 신뢰할 수 있도록 상응 조치에 대한 상호 합의도 포함돼야 한다. 여기에는 연락 사무소 설치 등 미·북 관계 개선 조치들과 북한과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제재의 일부 완화 등이 우선적으로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약속을 이행하면 진전시켜 나가고, 약속을 어기면 뒤로 되돌릴 수 있는 ‘유연 반동 방식(snapback)’도 담겨야 한다. 

셋째, 완전한 비핵화를 이룬 단계에서 남북한과 미국 및 주변국이 기대할 수 있는 최종 상태에 대한 밑그림도 포함돼야 한다. 역내 힘의 역학을 바꿀 수 있는 소지가 많은 협상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의할 점은, 한·미 동맹이나 주한 미군이 북한의 핵 개발 전부터 있어 왔다는 점에 유의해 섣불리 이를 협상의 테이블에 올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동시 진행형이어야 한다. 북한의 선의에 의한 평화나 한국의 선심에 의한 평화도 비현실적이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해 비핵화와 평화 구축 조치는 상호 검증 가능한 형태로 진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