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포스트 하노이) "日, 한국 방치...과거사 앞세운 탓" (조선일보 2019.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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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30

"일부 정부 및 여당 측 인사들이 일본이 훼방을 놓아 2월 미·북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다는 말을 하는데, 근거가 없습니다."

4월 1일 만난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오히려 일본은 미·북 회담 결렬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지만, 청와대는 TV 중계를 보고 결렬 사실을 알지 않았느냐?"며 "이런 게 뼈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미·북 하노이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자 문제도 논의해 달라고 한 것은 국익 보호라는 당연한 외교 원칙을 지킨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4월 23일 서울 하얏트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외교·안보 국제콘퍼런스 ‘아산 플래넘 2019’에서 켄트 칼더 존스홉킨스대 교수, 리처드 맥그리거 로위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도구치 히데시 일본정책연구대학원 수석연구위원, 왕둥 베이징대 교수가 패널로 참가한 미·일 동맹 세션에서 토론을 이끄는 사회를 맡았다. 토론을 끝내고 다시 만난 그는 "한·일 관계는 악화를 거듭하는데, 미·일 동맹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학사, 석사)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조교수,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 컬럼비아대, 일본 게이오대, 일본 고베대 객원교수를 맡았다. 2012~2016년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소장, 2017년 현대일본학회 회장, 2016~2018년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라는 평가를 받는다.

 "박근혜 정부 때 한·일 관계가 좋지 않았고 이를 통해 현 정부가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부가 ‘역사 인식’ 문제로 다투더라도 경제·방위 협력은 지속하는 투트랙 전략을 현명하게 쓸 줄 기대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한 ·일 관계의 최전선에 놓았다. 과거사라는 마차를 앞에 놓으면 뒤에 어떤 마차도 달릴 수 없다.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틀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본다. 과거지향적이다."

― 일본 정부가 ‘2019 외교청서’에서 한·일 관계가 한국 탓에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썼다. 지난해에는 있었던 ‘미래지향적인 관계’라는 말을 올해는 뺐다.

 "요즘 일본 외교·안보 전문가를 만나면, 한국 누구와 약속을 해야 약속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화해 ·치유재단 해산 발표 등은 한국 정부가 약속한 사항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일본은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과 ‘지속가능성(consistency)’을 중요시한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을 ‘전략적으로 방치하자’고까지 주장하더라. 아베 신조 총리가 국내 정치(극우 결집 등)를 위해 한국을 활용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우리 정부가 활용당할 여러 빌미를 줬다고 생각한다."

― 4월 23일 중국 국제 관함식에 일본 해상 자위대 호위함이 욱일기를 게양하고 참가했다.

 "중·일 전쟁으로 1200만명 이상의 중국인이 죽었다. 그런데도 중국이 욱일기 게양을 문제 삼지 않은 이유는 뭘까. 미·중 무역 전쟁 중인 중국은 ‘헤징(hedging·위험 분산)’ 차원에서 일본과의 친밀함을 극대화하고 있다. 23일 아산플래넘에서 만난 중국의 교수도 이런 분석에 동의하더라. 지난해 제주 관함식에 욱일기 게양을 문제 삼았던 한국 정부는 민망하게 됐다. 중·일이 밀착함으로써 한국이 노골적으로 ‘패싱’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일본이 중국에 밀착하는 이유가 있나.

 "일본과 중국은 전략적 경쟁 관계이기 때문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틀린 말이 됐다. 지난해 10월 중·일이 7년 만에 정상회담을 했다. 두 나라가 느슨하게 손을 잡아 두는 것이다. 여기에는 트럼프 요인이 있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에도 요구할 건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연간 676억달러(약 78조원)의 대일 상품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자 특유의 협상전략으로 금기 사항까지 협상의 지렛대로 만들어 원하는 것을 얻지 않느냐.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한 아베도 어리둥절할 정도다.

한·일 관계 악화 탓에 일본 기업과 중국 기업이 손을 잡고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전력과 일본 마루베니가 참여하기로 한 요르단 발전소 사업에 한전이 빠지고 중국 기업이 참여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그동안 한·일 공동 참여한 10억달러 해외 프로젝트가 40개가 넘는다. 양국 외교 갈등이 비즈니스에 영향을 줄까 우려스럽다."


― 4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를 뜻하는 ‘빅딜’을 고수했다.

 "이제 한국은 미국을 대변해 ‘빅딜’이 없으면 협상이 중단될 수 있다는 입장을 북한한테 잘 전달해야 한다. 지금은 북한을 대변할 때가 아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사고는 치지 않을 테니, 사실상 핵 보유 국가로 남겠다는 뜻이다.

하노이 회담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북한은 비핵화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고, 영변 핵시설과 대북 제재 5개 완화를 맞바꾸려 했다.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한 나쁜 거래(bad deal)를 받지 않았다. 제재 5개를 완화할 경우, 북한은 비핵화를 가속할 인센티브가 사라진다. "

― 북한이 ‘빅딜’을 받아들이겠나. 볼턴은 리비아식 모델, 즉, 선(先) 핵 포기, 후(後) 보상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리비아식 모델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리비아가 핵을 포기해서 무아마르 카다피가 죽은 게 아니다. ‘아랍의 봄’으로 등장한 반군 세력이 카다피를 공격한 것이다. 미국이 리비아 내전 당시 반군을 보호했지만, 핵포기가 카다피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은 사회를 잘 통제하고 있어 리비아와 유사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 괜찮은 비핵화 모델이라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선 비핵화 후 보상’은 대북 압박 수단으로는 유용하지만, 협상안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미·북이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 합의를 하고 북한이 핵 신고를 한다면 두 나라 간 신뢰가 쌓일 것이다. 단계적 이행에서 첫 조치는 의미 있는 것을 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추동력이 생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북한의 강경파, 즉 군부들을 달랠 상응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 북한과의 협상에서 지켜야 할 것은.

 "경제적으로는 한국이 우위지만, 군사적으로는 핵을 개발한 북한이 명백하게 우위에 있다. 북한이 핵을 가진 이상, 북에 하나를 줄 경우 다른 하나를 반드시 북으로부터 얻어내는 ‘대칭적(symmetric) 상호주의’를 고수해야 한다. 비핵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한· 미 동맹’등은 협상의제에 올려서는 안된다. 한·미 동맹에만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되며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안보를 지켜야 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면 우리도 미사일을 개발해야 한다."

―2017년 미국은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통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새 국제전략을 공식화했다.

 "인도양 및 태평양 지역과의 연대를 통해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동아시아와 유럽을 장악하는 그림을 그렸고 미국은 일본, 인도와 호주 등을 진주 목걸이 형태로 연결하는 인·태 그림으로 맞서고 있다. 일본 아베가 처음 인·태 전략을 발의했고 트럼프가 국제 전략으로 채택했다.

아산플래넘에서 일본 측 토론자(도구치 위원)의 말이 기억 남는다. 그동안 미국은 동맹인 일본에 (돈을 대는) ‘회계사' 역할을 주로 요구했는데, 최근 불(전쟁)나면, 불도 같이 끄는 ‘소방수' 역할까지 주문하고 있다고 하더라. 미·일 동맹이 진화하고 있다."

―한국은 일대일로, 인·태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하나.

 "미국은 한국도 인·태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한국은 결정을 유보해 둔 상태다. 한국은 중국 수출량이 많은 까닭에 중국의 눈치를 보며 인·태에 들어가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한국은 인·태를 선택하리라 본다. 한국은 사드·THADD) 사태 이후 중국 시장에만 의존해서는 안되겠다는 위기 의식이 생겨났다. 또, 중국의 지원을 받았다가 큰 이권을 빼앗긴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아프리카의 사례가 잇따르면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경계심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두 진영의 압박에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투명성’과 ‘공정함’을 내세우는 국제 질서에 동참하겠다는 원칙을 지켜나가면 된다. 이 원칙에 따르는 게 인·태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인·태는 의존(dependency)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율(autonomy) 존중한다’고 강조한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은?

 "한국 전쟁 당사자는 남·북·미·중이다. 일본은 직접 당사자는 아니니, 지금 당장 일본이 참여할 명분이 많지 않다. 하지만, 미·북 수교가 되면, 북·일 국교 정상화도 급물살을 탄다. 양국은 2002년 9월 국교 정상화 의지를 담은 북·일 평양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 잘 보이지 않는 일본이 갑자기 등판해 ‘큰 손’ 역할을 할 것이다. 일본은 북핵 검증과 신고를 위한 막대한 비용 중 일부를 댈 수 있다고 이미 밝혔다. 또 식민지 통치를 통해 확보한 인프라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에 대규모 자본 투자에도 나설 것이다.

일본 정부의 ‘2019 외교청서'에는 ‘북한에 대한 압박을 최대한으로 높여갈 것’ ‘북한의 핵·미사일 증가가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이라는 빠졌다. 트럼프의 대화 기조에 따라 아베도 김정은과 직접 대화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8/20190428002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