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괴물 잡는 괴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경향신문 20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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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정동칼럼]괴물 잡는 괴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괴물이 탄생하고, 수단과 방법이 절대화되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정당한 수단이 아닌 반칙이 절대화되면 목적을 상실한 괴물들의 세상이 오게 된다.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려면 목적과 이상이 바르고 뚜렷해야 하고, 절차와 규범과 윤리와 법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는 괴물과 그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그 청산의 과정은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정당한 수단과 방법, 그리고 바른 목적을 향하여 청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을 잡기 위해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한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은 반칙과 특권을 혐오하는 지도층과 자기 성찰이 이루어지는 강고한 지지층이 나와야 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정치의 세계에서는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정치괴물이 탄생한다. 선거법을 위반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죄 없는 사람 잡아다 고문하고, 정적을 인격살인하고, 물리적·정신적으로 반대세력을 협박하면서 권력을 잡으면 괴물정권과 괴물세력이 탄생한다. 우리는 과거에 그 괴물을 보아왔다.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왜 권력을 잡으려 했는지, 그 목적을 잊어버리면서 나라는 쉽게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라가 독재나 파시즘으로 가거나, 경제위기와 거리의 투쟁이 반복되는 혼란스러운 세상이 오게 된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괴물이 먼저인 세상이다.

정책의 세계에서는 특정 세력의 부와 권력을 위하여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을 도외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면 막대한 세금의 낭비와 함께 괴물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불투명한 과정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이며 의무일진대, 비판세력을 반정부세력 혹은 사상범으로 몰고 인격살인까지 하면서 괴물정책을 관철하면 나라는 망가지고, 국가의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불필요한 국력이 낭비되고, 국가는 일반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괴물의 나라가 되어간다. 4대강사업의 교훈이 아직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경제의 세계에서는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경제괴물이 탄생한다. 불법·탈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막대한 재산이 경제수단이 아니라 권력수단이 되는 순간 선출되지 않은 경제권력이 4년, 5년마다 바뀌는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경제괴물로 바뀐다. 이들은 법을 어겨도 죄를 면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을 만들고, 법과 규칙과 윤리를 수호해야 하는 공복과 지도층을 돈의 유혹과 명예의 유혹으로 타락시킨다. 국가는 금권정치와 특권세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민중은 부글부글 끓는다. 

이렇게 탄생한 괴물과 혼탁한 사회적 분위기는 사회의 기본을 앞장서서 지켜나가야 할 지식인 세계에서도 괴물을 탄생시킨다. 연구윤리를 어기고, 데이터를 조작하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쌓는 학자들이 나오고, 자신의 연구를 연구 그 자체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음모론과 지지층의 협박과 대중영합으로 방어하는 괴물이 생겨난다. 이제는 기억이 아련해졌지만 한때 나라를 뒤집어 놓은 황우석 사태가 전형적인 예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연구가 학계의 괴물을 탄생시켰으며, 진영싸움을 하는 학계와 언론, 정치가 학문의 발전을 막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대학은 연구와 교육의 장이 아닌 정치판이 되고, 학생과 부모는 공부와 자기개발의 목적을 상실하여 스카이캐슬을 만들고, 언론은 자극적이거나 정파적이 되어 본연의 비판기능을 상실하고, 문화는 천박해지고, 먹거리는 불량해지며, 인간관계는 타도대상 간의 관계이거나 같이 음모를 짜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 추락한다. 

이러한 사회의 여론은 법과 윤리를 지키는 비판적 여론이 아니라 누구 편이 이기는가에 몰입하고,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은 인격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여론이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적폐이고, 이를 청산하는 것이 적폐청산이다. 괴물을 잡기 위하여 괴물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괴물의 세상이 온다. 우리 사회는 괴물이 되지 않아도 괴물을 잡을 수 있는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게 순진한 기대라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