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수능 이후 (경향신문 20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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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정동칼럼]수능 이후

수능이 끝났다.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은 긴 입시 지옥에서 조만간 벗어나 대학생이 될 것이다.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사실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들이 대학이라는 곳에서 고등교육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의 교육은 전공과 상관없이 고등교육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그 고등교육을 학과에 치중된 전문적인 교육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많은 학생들이 학과와 상관없이 직업을 선택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전문성 교육이라기보다는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는 어른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제 수능 이후에는 이 어른의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학교나 학과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어른이 되는 교육을 잘 받으면, 80~90세까지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후회 없는 인생을 살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반대로 어른이 되는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벌써 30대부터 우리는 괴물 혹은 좀비의 인생을 살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은 제대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금방 고장이 난다. 음식을 잘못 먹거나, 무리하게 운동을 하거나, 일을 과도하게 하면 몸에 이상신호가 와서 불안해진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유행하는 것 중 하나가 몸을 잘 관리하는 것, 즉 피트니스를 유지하는 일이다. 특히 요즘에는 영양상태가 과도하게 좋아져서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고, 음식을 잘 조절해서 먹는 어른들이 많아졌다. 음식의 생산지를 따지고 칼로리도 따지며, 무산소 운동·유산소 운동을 학습하고 실천한다. 좀 더 나아가서 좋은 몸매와 옷맵시를 살리기 위하여 남들보다 더 지독하게 음식을 가리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너무 과한 것은 부작용을 초래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몸에 대해서 스스로 관리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기의 몸에 대해 자기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른이 되어서도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아무렇게나 몸을 굴리면 우리의 몸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아프거나 기형적인 몸을 갖게 되고,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라는 공동체에도 부담이 된다.

그런데 묘한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몸 건강에 대해서 이렇게 극진하게 신경을 쓰는 것에 비해 정신 건강, 뇌 건강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큼 무감하다. 몸의 영양이 과도해지듯, 정보화시대에 뇌에도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흡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의 원산지를 따지거나 품질을 따지거나 정보가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지 잘 따지지 않는다. 맛있는 것만 먹듯이 맘에 맞는 정보만 섭취하고, 알코올중독이 되듯이 특정 생각에 중독이 되며, 머리 쓰는 일에 게을러진다. 그렇게 되면 몸이 기형적으로 변하듯 우리의 머리도 괴물이 되거나 좀비로 변할 수밖에 없다. 잔인한 사고와 허약한 사고,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사고를 하게 되면서 수많은 극단주의자와 아무생각 없는 바보가 만들어진다. 괴물과 좀비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어른이 된 후 80~90세까지 괴물이나 좀비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 건강과 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 교육이 바로 ‘비판적 사고’에 대한 교육이다.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교육이다. 비판적으로 사고할 줄 알아야, 정보의 원산지나 신선한 정도, 영양상태의 균형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판적 사고 교육의 핵심은 기존의 권위와 상식을 의심하고 따져보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찾아가는 훈련이다. 요즘 대학에서는 이러한 비판적 사고 교육을 잘 안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교수가 전달하는 교육을 그냥 받아들이는 경향이 심하다. 그러한 교육의 습관이 쌓이면 미래의 어른들은 정보의 편식을 하게 되고,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지면서 괴물이나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남이 대신 생각해 준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남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나에게 주입하여 맛있게 사육하여 잡아먹거나, 아니면 좀비와 같은 괴물로 만들어 이생이라는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배회하다 죽음을 맞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인생이 후반으로 익어가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대학의 이름이나 학과의 이름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배울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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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152044015&code=990308#csidx11bdc11671639d5a42144c72302256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