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교수](시론) 계엄령 문건의 진상, 군인의 명예가 걸려있다 (중앙일보 2018.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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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시론] 계엄령 문건의 진상, 군인의 명예가 걸려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7.31 00:29

5·16과 12·12 쿠데타 경험한 나라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 무너져
순수한 의도인지 정치적 목적인지
계엄령 검토 문건 철저히 조사해야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문건이 나오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국회 무력화와 언론 통제 계획까지 공개됐다. 정부는 이 문건의 진의에 대해 정확히 밝혀야 한다며 조사에 들어갔다. 반면 일부에서는 진상 조사를 반대하고 있다. 군은 모든 상황에 두루 대비해야 하므로 계엄령은 다양한 옵션 중 하나이지, 정치적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어떤 문건이든 의심이 가면 진의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언비어가 퍼지기 쉽다. 후자의 주장도 논리적으로 보면 잘못된 것은 없다. 군은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미 관계의 변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상황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긴급 상황에 대한 대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는 평화적인 것이었지만, 당시 그 시위가 끝까지 평화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서울 광화문과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경찰력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군이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외부로부터의 안보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안보 역시 중요하다. 오히려 내부로부터의 안보가 흔들릴 때가 더 위험하다. 물론 굳이 기무사가 그걸 준비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현대사 경험들은 이런 사건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주당 정부가 집권했던 1961년 1월 당시 딘 러스크 미 국무부 장관은 한국에서 군대에 의한 쿠데타설이 제기되고 있다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5·16 쿠데타가 발생하기 4개월 전이었다. 같은 해 4월 21일 미 중앙정보부(CIA) 한국 지부는 ‘박정희’를 지목하면서 다시 한번 쿠데타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군내 정보국이 조사하고 있으며, 사흘 뒤 장면 총리에게 보고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시론 7/31

시론 7/31

보고서에 따르면 쿠데타설을 보고받은 장면 총리는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조사를 지시했는데, 장 총장은 쿠데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했다. 이후 그 쿠데타에 대한 정보는 그냥 잊혀졌다. 장면 총리는 장도영 총장을 굳게 믿었다. 그로부터 불과 3주가 지나서 쿠데타가 발생했고, 장도영은 쿠데타군 측에 투항했다. 그가 쿠데타 모의에 처음부터 관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박정희로부터 사전에 쿠데타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쿠데타가 성공하자 쿠데타군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4·19 혁명을 통해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는 그렇게 무너졌다. 이후 25년이 넘도록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국민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계속돼야만 했다.
 
군대는 모든 상황에 대응해야 하지만, 정부도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다시 세웠다고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1960년에도, 1987년에도 국민은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다. 대부분의 군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으며, 민주화의 소중함에 공감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5·16이나 12·12 쿠데타처럼 일부 군인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군을 이용했고, 정부와 국민은 그 시도를 막지 못했다.
 
이번에 제기된 계엄령 문건 조사는 군을 위해서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대부분의 군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의 안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군의 정치 관여는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절대다수 군인의 명예를 실추시킬 것이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와 태평양에서 일본의 황군(皇軍)으로 복무했던 이종찬 장군이 ‘친일’ 대신 ‘참군인’으로 기억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령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군의 정치적 중립과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자 했다. 4·19 때 국민에 의해 무너져 가던 이승만 정부의 진압 명령을 거부했던 군은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법치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어떠한 시도도 철저하게 조사하고,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한국 사회는 또 한 번 흔들릴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발생했던 몇 차례의 불행한 쿠데타 경험은 이를 잘 말해준다. 만약 그 의도가 순수한 것이었다면, 그 순수함을 밝히면 된다. 참군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조사를 거듭 촉구한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론] 계엄령 문건의 진상, 군인의 명예가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