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북한 비핵화의 종착역 (경향신문 2018.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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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정동칼럼]북한 비핵화의 종착역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북한 비핵화의 끝을 보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왜 국가들은 쉽게 협력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무작위로 죽이는 전쟁을 준비하려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전쟁보다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유약한 겁쟁이라고 비난한다. 죄 없는 어린아이, 부녀자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가는데 단지 적국이라는 이유로, 혹은 독재자가 있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폭격이 자행될 때 많은 사람들이 박수치고 환호하기도 한다. 인간들이 어쩌다 이렇게 잔인해진 것일까? 다른 종에 대한 대량살상을 통해 먹이사슬의 최고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도 언젠가는 대량살상을 당할지 모른다는 진화론적 불안감 때문일까? 내가 살기 위한 정당방위인가? 모르는 사람들을 막 죽이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수히 많을 터인데, 왜 우리는 전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인간의 분쟁과 전쟁을 설명하는 학설은 무수히 많지만 일상적인 전쟁의 공포를 설명하는 이른바 주류 국제정치 이론을 우리는 ‘현실주의’라고 불러왔다. 그 이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본시 이기적인 인간은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상태, 즉 무정부상태에 놓여 있으면 나를 지켜주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으니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타인을 의혹의 눈으로 보게 되고 불신이 커지고, 그러다보니 호전적이 되어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이거나 전투를 준비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전개된다. 이 자연상태 논리를 국가 간에 적용한 것이 현실주의인데, 국제정치는 국가 위에서 국가를 지켜주는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으니 이런 자연상태와 같은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본시 이기적인 국가는 불안하고 불신하고, 결국 호전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짐작했겠지만 이 논리는 17세기 영국의 철학가 토머스 홉스의 자연상태론을 국제정치에 차용한 것인데, 이 논리가 거의 한 세기 가깝게 근대 국제정치학계의 주류 자리를 차지해 왔다. 이 현실주의 이론에 매료된 수많은 학자와 정치인들, 그리고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국제정치는 국가 간 투쟁의 일상이며, 그래서 협력보다는 전쟁을 준비해야 하고, 힘을 쌓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키워 왔다. 미국과 같은 힘센 국가와 동맹을 맺고 있어야 이 투쟁의 일상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살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런데 이 현실주의 이론은 사실 역사의 특정한 시기와 공간의 일을 항상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로 일반화한 매우 위험한 가공물이다. 예를 들어 홉스의 자연상태로 다시 돌아가 보자.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유약한 인간으로서 원시적인 자연상태에 놓여 있으면 실제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식인종이 아닌 이상 다른 인간을 죽일 생각을 하기 전에 어떻게 주위의 인간과 협력해서 먹을 것을 찾고, 맹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나아가서 협력해서 농사를 지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즉 투쟁 이전에 협력이 먼저 오게 된다. 다만 어떤 집단이 협력을 통해 뭔가 풍족하게 소유하게 되면 그때부터 이걸 지키거나 약탈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투쟁은 빼앗을 것이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고, 빼앗을 것은 협력이 있어야 애초에 생겨난다. 그래서 현실주의는 거꾸로 자연상태가 아니라 사회상태를 가정한 것이고 약탈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만약 서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분업을 해서 교환을 하고, 그 교환을 체계적으로 잘 관리하면 장기적으로 풍요로운 공생이 보장된다는 것을 우리가 배우게 되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실제로 그 상황은 봉건제가 타파된 후 근대국가 안에서는 이미 실현되었고, 이 교환의 체계가 근대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국가 간에 형성된 국제질서가 1945년 이후 점차 공고화된 이른바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것이다. 

이제 국가들은 전쟁보다는 서로 교환의 체계를 잘 보호하고, 보완,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된다. 전형적인 예가 유럽연합이다. 이들은 국방비를 올려서 강한 국가가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서로 교환의 체계를 촘촘히 하는 통합의 길을 걸어왔다. 유럽연합만큼 촘촘하지는 않지만 다른 ‘정상국가’들도 서로 의존하고 공생하면서 교환의 체계를 협력적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 오늘날의 국제질서이다. 결국 북한 비핵화의 종착역은 북한이 이러한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속도조절이 필요하겠지만 북한이 이 교환의 체계를 안팎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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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312103015&code=990308#csidxb91f54ccf5d933389d8f67a0c599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