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교수](시론) 美 통상 압박 풀려면 文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조선일보 2018.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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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시론] 美 통상 압박 풀려면 文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 : 2018.03.15 03:17

트럼프가 발동한 통상법 232조… 보호주의 攻勢의 서막에 불과
세계가 '통상 전쟁'에 빠질 우려

美 통상 압력에 대응 못 하면 경제 회복 노력 물거품 될 판
韓·美 정상 소통 창구 늘려야

우려하던 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미국 통상법 232조를 발동했다. 이 232조는 국가안보를 빌미로 기존 세계 통상체제를 초토화할 수 있는,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적 조치이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73년 만에 사상 초유의 보호주의적 통상 전쟁이 촉발되지 않을까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선거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기치로 들고나온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정책에서도 레이건의 궤적(軌跡)을 그대로 좇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1981년부터 8년간 재임한 레이건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보호주의 통상 조치를 시행했다. 취임 첫해부터 '수출자율규제'를 명목으로 일본 자동차 수입을 제한했는데, 임기 중에 이를 철강·반도체·제작기계·섬유 등 44개 분야로 확대했다. 무역보복으로 악명 높던 301조를 강화하고 국가안보를 빌미로 232조 조사를 9차례 개시했다. 재임에 성공한 직후에는 일본과 독일의 환율을 대폭 재조정하는 플라자합의까지 밀어붙이고 미국이 가장 경쟁력 있는 서비스와 지식재산권 분야까지 무역 체제에 포함하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을 출범시켰다.

이러한 1980년대 횡행한 무지막지한 보호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요즘 연일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는 트럼프의 조치는 서막(序幕)에 불과하다. 트럼프는 필요하다면 국가안보와 환율 조작, 무역 적자 등을 빌미로 통상 조치를 무한대로 강화해갈 테세다. WTO 체제를 기획한 레이건 행정부의 의욕만큼 이 체제를 자국 이해에 맞춰 새로 개편하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

그러나 고도로 통합된 세계경제 구조로 말미암아 트럼프 정부의 통상 조치들은 미국에도 부메랑을 가져올 것이다. 일례로 외국산 수입 제품에 대한 고율(高率) 관세 부과로 미국 내 철강과 알루미늄 가격이 오르면, 최대 소비처인 자동차산업의 생산비가 올라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미국 자동차 시장 보호 요구가 다시 거세지는 악순환이 예상된다. 통상 마찰이 철강 등 단일 업종을 넘어 연관 또는 후방 산업으로 확산되는 셈이다.

국가안보를 빌미로 유럽·일본·한국 등 전략적 동맹국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든 극단적인 보호주의 공세를 강화하는 미국에 맞서 유럽연합(EU)과 중국은 무역 보복 조치 불사를 외치고 있다. 세계가 통상 전쟁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을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에서 수출 기여율은 64.5%에 달하고, 수출에 의한 취업 유발 인원이 전체 취업자 중 17%에 육박하는 447만명에 달한다.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에도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최근 4년간 두 배로 늘었고, 수출의 취업 유발 비중도 2012년부터 계속 상승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모두 '수출'이란 외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최근 급속도로 악화되는 세계 통상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일자리 창출 노력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일군 우리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고스란히 물거품이 될 판이다.

더욱이 레이건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교범' 삼아 본격화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조치는 '관리무역' 체제까지 도입할 태세다. 자기들 '입맛'과 '가치'에 맞는 국가만을 골라 232조 조치를 선별적으로 제외해주는 게 그 시작이다.

세계 교역 구조를 전면 개편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에 우리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이제는 청와대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을 위시한 두 나라 최고위급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핵심이다. 통상법 232조에 따른 안보 관련 수입 제한조치 문제를 실권(實權) 없는 실무자가 아무리 얘기해 봐야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북핵 위기 공동 타개와 경제통상 협력으로 한층 강화된 '핵심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역할과 가치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략적으로 각인시켜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 차원의 통상 관련 총괄 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양국 최고위급 간 소통 창구 확대가 절실하다. 앞으로 몰아닥칠 통상 파고는 산업계나 통상교섭본부 수준의 대외 접촉으로는 역부족이다. WTO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미국의 통상 압박은 정상 차원의 신뢰 확보·구축으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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