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글로벌포커스) 트럼프 맘대로? 우리 뜻대로! (조선일보 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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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對美 외교, 반응형 전략 버리고 트럼프의 과격한 주장을
우리의 장기 전략에 맞춰 활용해 자강 능력 높여가는 적극적 자세를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바깥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우리를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특별히 우리를 배려해 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국제 정세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명민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하면서 동아시아와 한국에는 격랑이 몰아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는 북한 문제를 중국에 위임할 수도 있고, 김정은과 대담한 협상에 나설 수도 있고, 군사적 수단을 테이블에 올릴 수도 있다. 동맹의 가치를 저울질하면서 주한 미군 기지 분담금을 올리자고 요구할 개연성은 크다. 한·미 FTA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재협상과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한 시장 개방 압력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크다.

트럼프 등장의 가장 큰 도전은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다. 그는 종잡을 수 없는 화법을 통해 선택지를 넓히고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려 협상 지렛대로 활용한다.

한국은 벌써 트럼프가 던지는 도전에 불안해하고 있다.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수동적 수용론과 미국을 빨리 설득해야 한다는 조바심 어린 선제적 대응론이 전략적 논의보다 먼저 고개 들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동아시아 정책의 윤곽이 가시화될 때까지 반년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5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허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미 동맹을 일방적 의존 관계로 인식하게 되면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순응적으로 요구를 삼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성숙해진 동맹의 현실과도 다르고 한국 국민의 자존심과도 배치된다. 쌍무적 동맹 관계 강화는 이미 현재 진행 중이다. 한국은 미국의 어느 동맹보다도 일체화된 안보 협력 구조를 가지고 있고, 충실하게 동맹의 분담금을 부담하고 있으며, 글로벌한 차원에서도 협력의 선봉에 서 있다. 하지만, 쌍무적 동맹의 강화에 머물기에는 트럼프가 던지는 도전의 파도가 거셀 수 있다. 미국이 제기할 수 있는 요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동맹을 통한 협력적 자강(自强)'의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 문제에 대한 불만을 새로운 대북 전략 수립의 전환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도 필요하고 미국과 중국의 협력도 필요하지만, '외주 외교'로는 북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한국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한국의 대북 협상력을 높일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분담금 인상 요구에 대해서는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면서도 한국의 자주적인 방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군사기술 이전, 첨단 장비 판매, 한국의 독자적인 방위 능력 향상, 전시작전권 조기 이양의 기회로 치환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협력하면서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위한 길을 재촉해나가야 한다. 미국의 시장 개방 압력과 무역 재협상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수용에만 그치지 말고, 미국 시장에 직접 투자를 늘리고 거점 생산시설 기반 확충을 통해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면서 북미권 시장 진출을 적극화하는 전략적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의 등장과 더불어 일부 논자는 미국의 요구를 빨리 감지하기 위해 트럼프 진영과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유연한 협상 기술을 발휘해서 피해를 최소화하자고 한다. 트럼프의 요구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고 받아들이자는 주장이다. 혹자는 일방적인 미국 의존 을 줄이기 위해 동북아의 다자주의적 협력 틀을 확대하고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의 횡포를 견제하자고 한다. 트럼프의 요구에 맞서기 위해 다른 세력과 손잡자는 주장이다. 두 전략 모두 반응형(reactive) 외교 전략이다. 더 적극적(proactive)인 전략은 트럼프의 과격한 주장을 우리의 장기적인 전략에 맞추어 활용하고 한국의 자강 능력을 높여가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0/20161220030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