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글로벌포커스) 韓中日 지도자 삼국지 (조선일보 20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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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日 아베 총리·中 시진핑 주석은 최고 전문가와 책사 두고 쓴소리 청해 듣고 의견 구해
비판의 소리도 참고하고 전문가 의견 경청하는 소통의 지도자를 국민은 원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보는 국민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 21세기에 그야말로 봉건시대에도 있을까 말까 한 전근대적인 일이 현실로 드러났다. 권력의 사유화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자 법치국가라는 헌법적 가치를 유린했다. 비선 실세의 실존은 공직자에 대한 신뢰와 권위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흐트러졌고 막장 드라마는 세계의 비아냥거리가 되어버렸다. 한국이 이 정도는 아니라고 믿는 국민 억장이 무너진다.

한국은 지금 경제·사회·교육·외교·안보 등 모든 방면에서 총체적 위기에 부닥쳐 있다. 그런데 구호만 난무할 뿐 위기 대응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국 지도자들은 국가의 도약과 국민 생활 개선에 골몰하는데, 우리만 우물 안에 갇혀 국민을 도외시한 국정 농단과 권력 게임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온 국민이 안타까워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다.

지도자의 연설문은 곧 국가의 메시지다. 그래서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겐 다니구치(谷口)라는 연설문 담당 비서관이 있다. 책을 많이 읽고 의견을 듣고 명문장을 되씹고 구체적 사례를 찾아내 감동을 전한다. 수많은 공조직 전문가가 윤독을 거듭하며 문장을 완성한다. 최순실같이 전문가도 아니고 삼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적 조언자에게 지도자의 연설을 다듬게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버젓이 공조직이 있는데 사조직으로 공문서가 흘러나간 건 경악할 일이다.
 

2014년 10월 21일 방한한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이 서울 외교부 청사를 찾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나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도자는 누구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갈구한다. 그들은 대부분 최고 전문가와 책사의 의견을 구한다. 아베 총리는 야치(谷內)라는 외교 책사의 의견을 묻고 그에게 주요국 요인들과 집요한 협상을 벌이게 한다. 시진핑 중국 주석에겐 왕후닝(王?寧)이라는 아이디어 정제사가 있어 국가 발전 전략을 조율한다. 한국에도 정책 전문가와 국제 전문가가 즐비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의견을 듣고자 전문가들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저녁 7시 이후 각계각층 사람과 대화하며 의견을 청취하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한다.

싫은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참모가 없는 지도자는 오만해진다. 아베 총리에게 쓴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이인자라는 스가(菅) 관방장관이다. 관료들도 서슬이 시퍼런 그에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 하지만 청와대나 내각에서 대통령에게 고언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참모 대부분은 살아남기 위해 묵묵히 적었고, 말없이 적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쓴소리를 하거나 권력의 비밀에 손을 댄 이들이 싸늘하게 내동댕이쳐지는 걸 지근 거리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참모의 의견을 구하지 못한 책임도 결국은 지도자에 있다.

기자회견하는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관방장관. /AP 뉴시스

대면 보고와 토론은 정책 결정에 중요하다. 민감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을 보고서에 담는 관료는 없다. 시진핑이 막대한 권력을 가진 듯 보이지만 중국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이고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한다. 아베는 수시로 차관과 실무국장을 불러 채근한다. 역정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은 아이디어를 채용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선 비서실장조차 대면 보고가 거의 없었다는 게 통설이다. 수석 회의나 국무회의에서 국사에 대해 격의 없이 논쟁을 벌이는 치열함이 국민에게 전달된 적도 없었다.

국민은 참모와 토론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국민과 진솔한 소 통을 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쓴소리도 들어주고 다른 의견들을 견주어보고 비판의 소리도 참고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무엇보다 국민은 구호나 전시용이 아니라 먹거리를 윤택하게 하고 생활을 안정되게 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위기의 지도자가 리더십 스타일을 바꾸지 못한다면,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갈망은 깊어져만 갈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01/20161101032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