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교수](박태균의 역사와 현실)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과 교훈 (경향신문 201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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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2004년 10월 일본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4년 10월 일본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년 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 주둔지역에 있던 전쟁박물관의 관장을 만났다. 그는 가끔 일본인들이 박물관을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의 한국군 활동 관련 자료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베트남인과 한국인 외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자료를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박태균의 역사와 현실]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과 교훈

재작년에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문서가 일본의 한 잡지에 실렸다. 베트남에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을 때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내용의 보고서였다. 일본의 일부 인사들은 왜 이렇게 베트남에 주둔했던 한국군과 한국인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일까?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한국과 일본 누리꾼 간의 토론이 있었다. 아래는 그 토론의 일부를 왜곡됨 없이 편집한 내용이다.

갑(한국인) =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전범국이라 부르는 건, 일본이 유일하게 자신의 전쟁범죄를 온전히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을(일본인) = 일본은 당신보다 더 도쿄 재판의 결과를 수용했고, 그래서 처벌을 받았어요. 한국에서는 범죄자가 형기를 마치고 나와도 죄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병(한국인) =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이었지만, 처벌받지 않고 방면되어 다시 총리가 된 것 아닌가요? 그게 처벌인가요? 

을 = 그는 전범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방면되었죠. 조선인 중에는 일본 제국군 장군도 있고, 전범으로서 처형되기도 했습니다만, 한국인은 필리핀인이나 중국인에게 사죄했습니까? 한국은 베트남전쟁에서의 전쟁범죄를 사죄하고 있는 것입니까? 반대로 일본처럼 전쟁이나 식민 지배를 몇 번이나 사죄한 나라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한국인은 전혀 모릅니다.

갑 = 조선인인 일본군 장군을 한국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본 군인입니다. 그는 식민지 조선인으로, 일본인(내지인)이고자 했겠지만. 한국을 사랑한 한국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식민 지배의 사죄가 얼마나 진정한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일까요? 

을 = “마음을 담았다”고 하는 것은 주관의 문제이므로, 평가가 어렵네요. 그러나 세계에서 그런 마음의 위로를 한 예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전례없이 일본에 너무 어려운 요구를 하시는군요. 미국도 소련도 중국도 영국도 네덜란드도 프랑스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군 위안부, 독일군 위안부, 프랑스군 위안부. 위안부보다 지독한 것이, 적국 여성의 강간. 누가 사죄한 적이 있는 것입니까? 일본뿐이에요.

갑 = 한국도 베트남에 사과했습니다. 

을 = 일본이 독일이라면 한국은 오스트리아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요? 오스트리아는 병합에 반대한 총리가 체포되어 독립을 회복할 때까지 형무소에 수용되었습니다. 한국은 병합에 찬성한 총리가 일본의 귀족이 돼 유복해졌습니다. 

병 = 첫째, 한국의 한 시민단체는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 설립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시민사회가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베트남이나 미국에 가서 한국군 관련 자료들을 찾아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더군요. 둘째, 한국이 전쟁에 대해 사과한 적도 없고, 전범을 처벌한 적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가 반성해야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전후 냉전체제가 진행되면서 전범국인 일본이 미국의 파트너가 되면서 전쟁범죄는 ‘반공’이란 이름 아래 최소한의 처벌로 약화되었습니다. 도쿄 재판은 대충 진행되었습니다. 야스쿠니에는 인도 출신 재판관에 대한 감사의 상(像)이 서 있지 않습니까? 이후 한·일 양국에서는 미국의 지원 아래 냉전독재와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계속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범에 대한 진정한 조사는 지난 70년간 모두 묻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식민지화에 반대해 자살하거나 자기 재산을 팔아 중국 동북지역에 반일 군사학교를 설치한 명문 가족들도 있습니다. 왕의 동생 중 서울을 탈출해 독립운동을 하려고 한 분도 있었고요. 그러나 지배세력의 주류는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파쇼·군국주의에 협력했죠. 지금 이러한 문제들을 파헤치려고 하는 역사학자나 교과서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공히 ‘자학사관’을 갖고 있는 ‘좌파’로 낙인찍혀 있죠. 

다시 8·15를 맞이한다. 위의 토론이 한·일 양국 사회의 인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1945년 8·15로부터 70년하고도 1년이 지난 오늘에도 계속되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과거사 인식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한국 사회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짐이다.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면서 교훈을 얻기보다는 한국이 잘한 것을 자화자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정교과서는 지금 어떤 내용으로 얼마나 만들어졌을까? 위의 토론에서 한국인의 주장이 더 떳떳해야 함에도 변명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08102052005#csidx3ccc5d77e6edbd9ac76cb612f35b435